“뭐라고 소개해야 하죠? 음, 피겨 전 국가대표 선수였고 지금은 ‘라 레볼뤼시옹’으로 데뷔하게 된 이준우라고 합니다.”
이준우(25)는 멋쩍은 듯 웃었다. 금세라도 비가 내릴 듯 흐렸다가 잠시 햇빛이 비치기도 하는 4월의 마지막 날,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우는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의 연습복 위에 겉옷을 걸쳐 입은 채 나타나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피겨 전 국가대표’, ‘한국 남자 피겨의 맏형’. 지금까지 피겨 선수 이준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그를 장식하던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름을 바꾸고, 은반이 아닌 소극장 무대 위에 선다. 개명은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겸해 만든 예명이 이준우다. 이준우는 “어릴 때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새로 시작하는 마음에서 예명을 사용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준우는 은반에서 살았다. 피겨 선수 출신 코치인 어머니를 따라 은반에 처음 섰고, 7살 때부터 스케이트화를 신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나섰다. 한국 남자 싱글 선수로는 처음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는 등, 피겨 불모지로 꼽히는 한국 남자 싱글에서 두각을 발휘해 온 선수가 바로 이준우였다. 그러나 2019~20시즌 이후 더 이상 은반 위에서 이준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한동안 소식을 알 수 없었던 그가 돌아온 건 올해 초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조용히 스케이트화를 벗은 그는 오는 18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의 원표/피에르 역 신인 배우 이준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의 오랜 팬이나 관객들은 물론, 가족들마저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었다.
“원래 뮤지컬을 좋아하고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는데 그러면서 조금씩 꿈을 키워왔다. 나중에 은퇴하면 꼭 한 번 뮤지컬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다”는 이준우의 말처럼, 그는 선수 시절부터 ‘뮤덕’ 기질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SNS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공연을 보러 다녔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좋아하는 세계에 직접 뛰어들 결심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준우는 망설이지 않았고,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은퇴하고 여러 작품의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가 ‘라 레볼뤼시옹’ 오디션을 보게 됐고 감사하게도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 이준우는 “뮤지컬에 대한 꿈은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가족들에게도 함구했다. ‘라 레볼뤼시옹’ 오디션에 붙은 뒤에 그제야 얘기드렸을 정도이니 아마 다들 많이 놀라셨을 것”이라며 웃었다.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까봐 묵묵부답, 홀로 오디션을 보며 제2의 인생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딘 그는 곧 다가올 개막을 생각하며 지금도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이준우는 “그동안 혼자 얼음 위에 서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해온 경험이 있다. 그런 경험들 덕분에 오디션을 볼 때도 마냥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더라. 20년 동안 몸을 쓰는 운동을 해온 것도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사실 설레고 긴장되고, 걱정도 많이 되는 게 사실이다. 초반만 해도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걱정이 매우 컸는데 꾸준히 연습하고 열심히 준비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배우로서 관객들과 만나는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저에 대한)편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대한 열심히 해서 폐가 되지 않고, 보시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게 하고 싶다”고 말한 이준우는 “관객분들께 신선하게 다가가는 그런 배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운명적 첫 걸음을 앞둔 마음을 전했다.
*본 인터뷰는 마스크착용, 손 소독, 체온측정 등 코로나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진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