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 나는 지금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를 하는 중일까.' 시인 이상의 ‘오감도’(烏瞰圖) 제15호의 첫 구절이다. 이상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마지막 시이기도 하다. 이상의 시는 전형적인 것과 거리가 멀고,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을 들으며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상의 시에는 그가 느꼈던 쓸쓸함, 혼란스러웠던 정신세계 등이 담겨 있다. ‘박제된 천재’ 이상이 남긴 시는 시간이 흘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상의 시 중 ‘오감도 시 제15호’를 모티브로 탄생한 뮤지컬 '스모크'(제작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로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뮤지컬 '스모크'는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천재 시인으로 평가 받는 이상 시인의 작품 ‘오감도 제 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작품으로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반전, 그리고 배우들의 고밀도 연기로 초연에서부터 화제가 된 바 있어 이번 재연 개막 전부터 높은 관심이 쏟아졌다. '스모크'의 트라이아웃과 초연에 참여했던 김재범, 김경수, 윤소호, 정연, 유주혜 배우에 이어 이번 재연을 위해 새롭게 캐스팅 된 김종구, 임병근, 박한근, 황찬성, 강은일, 김소향 배우가 함께 참여하여 “믿고 보는 배우”, “꿈의 캐스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 ‘스모크’는 초(超), 해(海), 홍(紅) 세 사람의 연기로 무대를 채운다. 바다를 꿈꾸는 해와 그를 돕는 초, 그리고 두 사람이 ‘바다로 가는 마지막 티켓’이라며 납치한 홍. 단순해 보이는 관계지만 극은 이들의 정체를 쉽게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 ‘오감도 제15호’에서 느껴지는 ‘나’의 고통은 뮤지컬 ‘스모크’의 초와 해, 홍의 모습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해가 만들어낸 인격 중 하나인 초는 폐병, 주변인들의 손가락질 등 쉽게 이겨낼 수 없었던 고통을 모두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죽음을 권유하고 나선다.

이번 '스모크'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이색적인 설치로 완성된 무대였다. 비밀스럽고 미스터리한 드라마, 웅장하고 매력적인 넘버들, 그리고 인물의 심리 변화를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새로운 무대는 '스모크'의 매력적인 관전 포인트다. 극의 대사에 맞물려 비춰지는 그래픽영상과 조명들은 극중 인물들의 감정선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수월 하게하였다. 하나의 현대미술 작품을 연상케하는 하프돔 구조가 돋보이는 무대는 극중 세명의 인물이 벌이는 밀도 높은 연기를 예술적이고 스릴 넘치는 장면으로 탄생시켰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준 ‘초’와 ‘해’, ‘홍’이 함께하는 무대에 대해 ‘이 곳은 그들을 가두기도 하지만 무수한 가능성의 공간도 된다’고 이엄지 무대디자이너는 설명했다. 또한 초연부터 사랑받아온 허수현 작곡가의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들은 이번 재연에서 대부분의 곡들이 편곡으로 재탄생되어 관객들을 만났다.

뮤지컬 ‘스모크’는 오는 7월 15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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