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네 명의 딸이 있다. 맏이가 전날 아빠가 사 온 감자떡을 앞에 놓고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하고 있다. 맛이 이상할까 봐 걱정이란다. 녀석은 무슨 일이든 겁부터 낸다. 그게 천성인지 아무리 이해를 시키고 겁을 줘도 소용이 없다. 내가 잘못 길러서일까? 아이들이 어렸을 적만 해도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때라서 내가 욕심이 많았다. 무슨 특별한 교육관이라도 있는 양, 공부 빼놓고는 뭐든지 시켰다. 맏이와 둘째는 남들 다 배우는 피아노와 그림, 한문은 물론이고, 바둑이며, 수영 등 다방면을 가르쳤다. 특히 맏이에게는 태권도도 배우게 했다.

태권도 학원에 다니면서도 덩치 큰 동생에게 맞는 걸 보면 별 효과도 없었지만, 아무튼 완벽을 기하려고 애를 쓰며 키웠던 아이다. 그래서인지 맏이는 매사에 빈틈이 없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성적장학금을 받아오고, 어른을 만나면 언제나 예의 바르게 군다, 밤늦게 나다니는 경우도 없으며, 어디를 가든 제 행선지를 엄마 아빠께 알린다. 한마디로 아프지 않은 이상 부모 걱정을 안 시키며 크는 아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만큼 잔소리도 많다. 오늘 아침에도 현관문을 ‘탕!’ 닫고 나가는 셋째를 향해 신주머니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잔소리를 해댄다. 내가 학교에 두고 다닌다더라고 말을 전하자, 그럼 4층 자기네 교실까지 양말만 신고 가야 하는 데 어쩌냐고 또 걱정이다. 셋째는 맏이가 나온 여고를 다니니 사정을 잘 아는 모양이다.

내가 전날 저녁 셋째가 벗어놓은 양말을 주워들어 보였다. 바닥이 깨끗하다. “아이고! 엄마, 저것이 그냥 신발 신고 올라가나 봐. 못된 것! 꼭 저런 것들이 있거든, 난 애들이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안 봐! 해도 절대로 그렇게 못 했는데.” 하면서 못마땅해한다. 맏이는 소위 말하는 범생이다. 초․중․고를 다닐 때도 숙제를 못 하면 울고 불며 밤을 새워서라도 해가고 또 규정에 어긋나는 짓은 절대로 안 했던 아이다. 자신이 그러니까 동생들이 학교에서 못 신게 하는 발목양말 신는 것도 이해를 못 하고, 앞머리를 자르는 것도 못마땅해 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언제나 가방 빵빵하게 책을 가지고 다니던 저와는 달리 동생들이 허깨비같이 홀쭉한 가방을 메고 나가는 것도 이해를 못 한다.

“왜 저러지?, 저거 도대체 학교에 가서 뭐로 공부하려고 저러지?” 그런데 요즈음은 이 범생이가 조금 걱정된다. 대학 졸업반이 되도록 서클활동 하나 변변히 한 게 없단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만 올인한 모양이다. 자기네 과에는 남학생도 몇 없다면서 그 흔한 미팅 한 번도 하지 않았단다. 그러자니 여고 시절과 대학을 오로지 여자애들과만 어울려 다닌다. 그것이 이성에 대해 별 관심 없는 본인의 성향일 수도 있지만, 남자를 경계하라는 내 지나친 간섭 때문인 것 같아 그 점도 염려스럽다. 가만 보면 지나치게 반듯한 범생이는 이해심이 부족할 것 같고, 본인 또한 세상으로부터 쉽게 상처받을 것 같다. 그런 성격은 대게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갖다 대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는 동안 많은 문제와 몰이해에 부딪치게 될 것인데, 그럴 때 자잘한 사고를 치고, 그것을 극복하며 자란 녀석들은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더 견디기 쉬우리라. 나는 내 딸이 사막에 던져 놔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 만큼 강했으면 좋겠다. 다치지 않으면서도 폭넓은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으니 참 이율배반적이다. 그럴 때 겁쟁이인 내가 취할 수 있는 교육이 간접경험을 통한 지혜의 전달이다. 그래서 책도 많이 읽게 하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대화를 하려고 한다. 특히 장녀다운 의젓함이 있지만 약한 구석도 많은 맏이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한다. 대화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쇼핑을 한다거나 일요일 원거리의 교회를 오갈 때다. 땀 흘리며 뛰어서 출발 직전의 지하철을 탈 때도,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작은 파라솔에 머리만 디밀고 쓰고 갈 때도 우리는 끝없는 대화를 한다.

그럴 때면 드라마의 줄거리도, 길가에 산책 나온 이웃집 강아지도. 담장 위의 풍성한 장미도, 대화 속 주인공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같지 않으니 만사를 흑백논리로 보지 말고, 중간지점을 인정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데 중점을 둔다. 첫째는, 내가 교육적인 말을 시작하면 긴장을 하고서 듣는다. 그리고 스펀지처럼 받아들여 조금씩 너그러워지는 게 느껴진다. 아이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단단해지고 더 현명해질 것이다. 세월이 가면 이 엄마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들과도 친해지겠지! 나는 내 딸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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