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드] ‘웨스턴 스토리’ 김대종, “1막 등장 없어 편하겠다고요? 알고 보면 외롭습니다”①
어딘지 조금 이상한 서부극이 대학로에 웃음의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1886년 남북 전쟁 이후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다이아몬드 살롱’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창착 초연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로도 제작돼 유명해진 OK 목장의 결투라는 실화를 소재로 한 데다 <황야의 결투(1946)>, <툼스톤(1993)> 등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실존 인물 와이어트 어프까지 등장하지만 정통 서부극과는 미국 서부 끝과 동부 끝만큼이나 거리가 있다. 숨쉴 틈 없이 무차별 웃음 공격을 쏟아내는 <웨스턴 스토리>에서 만인의 시선을 한눈에 잡아 끈 단발머리 악당 ‘조니 링고’ 역을 맡은 김대종 배우와 12일 만나 극에 대한 이야기를 꼼꼼하게 들어봤다.
Q.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웨스턴 스토리>, 그리고 김대종 배우님이 맡으신 조니 링고 배역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정통 서부극을 표방하고 있는데, 대체 뭐에 정통한지 아닌지는 저희도 일단 찾아가고 있는 중이고요(웃음). 이 극에는 서부의 전설적인 영웅 ‘와이어트 어프’와 ‘조세핀 마커스’, 그리고 ‘조니 링고’라는 현상수배 3인방이 등장하는데 저는 거기서 악당 포지션을 맡고 있는 조니 링고 역할입니다. 사실 악당 조니 링고는 굉장히 흉악하고 극악무도한 역할인데, 공연에서는 섬세하고 여린 제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Q. 조니 링고의 분량은 거의 2막에 집중되어 있는데, 등장까지 대기시간 동안 주로 뭘 하며 보내시나요?
보러 온 친구들이 그래요, ‘꿀보직’ 아니냐고(웃음). 사실 리딩할 때도 그랬어요. 1막이 70분 넘는데 앞부분 조금 읽다가 가만히 앉아있으니까 다들 ‘조니 링고는 너무 편한 거 아니냐’고 말이죠. 하지만 극에 애드립이 워낙 많다 보니까, 1막 동안 계속 모니터를 하면서 오늘은 배우들이 어떤 애드립을 하는지 체크해놔야 2막에서 그대로 컨디션을 가져갈 수 있거든요. 이 흐름을 따라가려면 스트레스가 엄청나요. 저 나름의 타임 테이블도 확실하게 있습니다. 등장이 늦다 보니 몸도 너무 일찍 풀면 안 되는데, 조니 링고 셋(원종환, 김대종, 최호중) 다 극장에 굉장히 일찍 나오는 편이거든요? 3시간 전에 나와서 미리 몸을 풀어 놓으니까 공연 시작할 때쯤 되면 몸이 식어버려요. 모니터하고, 또 현장감이 다르니까 슬쩍 극장 올라와서 좀 듣고, 다시 내려와서 스트레칭하면서 몸 풀고 난 뒤에 가발 다시 쓰고 최종 분장 수정하고. 그렇게 나름 무대 뒤에서 바쁘게 보내고 있답니다. 사실 혼자 등장이 늦으니까 외롭기도 해요, 조금(웃음).
Q. <웨스턴 스토리> 개막부터 많은 화제가 되었던 것 중 하나가 1막 마지막과 2막 처음을 장식하는 웨스턴 버전 ‘그가 오고 있어’인데요. 조니 링고와 큰 관련이 있는 넘버이다 보니, 여기에 대한 김대종 배우님의 개인적인 감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사의 찬미> ‘못사(못 본 사람)’예요(웃음). 저희 콘서트 때 ‘저 바다에 쓴다’도 부르고 ‘섹동클’ 콘서트 때 음악도 (김)은영 감독님이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제가 안 보려고 안 본 게 아니라, 보려고 할 때마다 항상 매진이라서 어떻게 해도 표를 못 구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팀에 <사의 찬미> 경험자들이 있잖아요. 또 <사의 찬미>로 넘어가는 친구들도 있고. 처음 듣고 반응이 다들 빵 터지는 게 아니라 걱정을 하더라고요. ‘이래도 돼? 앞으로 안 할 거야?’ 이러면서(웃음.) 극의 성격이 다르니까, 그래도 이렇게 재미있게 사용되는 게 상호보완작용이 되고, <사의 찬미>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어요.
Q. 사실 <사의 찬미> 외에도 <웨스턴 스토리>에는 여러 극들의 패러디가 등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사 사이사이 애드립까지 다채롭게 웃음을 유발하는데요. 제작진과 배우분들이 극의 ‘웃음’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기본적으로 코미디는 기초공사가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관계성과 캐릭터성이 확실해야 하죠. <웨스턴 스토리>는 의외로 은근히 캐릭터성과 관계성을 끝까지 철저하게 지키고 가는 극이에요. 현상금 3인방만 해도 그래요. 배우의 자아와 캐릭터의 자아를 분리시켜서, 잘 구분 지어서 살리려고 하죠. ‘빌리’도 복수를 향한 집착은 끝까지 놓지 않고. ‘제인’도 일확천금의 꿈이라는 목표는 절대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가려고 해요. 이런 기본 골조가 잘 세워져야 재미있는 극이 되는 거죠. 애드립이나 패러디는 여기에 멋을 더 낼 수 있게 해주는 액세서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애드립이라는 게 늘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코미디 많이 하는 배우들은 항상 생각하는 건데 웃음에 집착하다 보면 냉정을 잃기 쉬워서 건드리면 안 되는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거나 비하 개그 같은 걸 할 수 있고 그렇잖아요. 하지만 코미디는 세상 흘러가는데 가장 민감해야 하는 장르고 선을 잘 지켜야 하는 장르예요. 조니 링고만 해도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외모와 성격 부분에서 조롱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그런 부분을 늘 체크하고 있죠. 여기는 다행히 경험 있는 배우들이 많아서, 끊임없는 자가진단을 통해서 선 지키면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지금까지 공연 중에서 ‘웃참’에 실패할 만큼 웃겼던 해프닝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요?
제가 진짜 웃음을 잘 참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웨스턴 스토리>하면서 얼마 전에 정말 웃음을 못 참은 날이 있었어요. 빌리를 치료해주는 장면인데, 제가 빌리 입에 하모니카를 물리고 CPR을 했거든요? 아니, 이 하모니카 소리가 너무 웃긴 거예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 뒤 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게티스버그 전투 회상 대사를 해야 하는데 계속 귀에 하모니카 소리만 들리고… ‘게티스버그 전투’ 이게 생각이 안 나가지고, ‘무슨 전투였더라?’하고 던졌더니 해리가 ‘북버지니아 전투’라고 또 잘못 알려준 거예요! 다행히 그 순간 대사가 기억이 나서 ‘이야, 다들 남북전쟁 잘 알고 있네.’하고 쓱 넘어갔죠.
아, 그리고 정전 났을 때도 정말 웃겼어요. 제가 스물 다섯 살에 대학로에 왔는데 그때 처음 정전을 겪고, 그 이후로 이번이 처음 겪는 정전이었거든요? 정말 웃겼던 게, 정전이 됐는데 관객분들이 당황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오히려 좋아하시더라고요. 아마 처음에는 정전이라고 생각을 못하고 연출이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정전인 걸 아시고는 약간 ‘레어 회차’나 이벤트 같은 느낌으로 즐기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때 갓 나와서 안대 쓰고 얻어맞는 장면이었단 말이에요. 그 상태에서 불이 꺼져서 같이 공연했던 (신)성민이가 정전된 가운데서 막 때리고, 그러다 불이 들어와서 또 막 때렸는데 이번에는 마이크가 안 켜져서 맞다가 또 중단되고. 결국 소대로 다시 나왔을 때 성민이가 그러더라고요. ‘이대로 공연 끝나면 관객들은 형이 누군지도 모르고 집에 가시겠는데?’ 다행히 무사히 재개돼서 잘 끝났지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