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제75주기 추모식

9일 오전 11시, 도산공원 묘소에서

2013-03-09     김소근 기자
  안창호 선생 75주기 추모식이 열린 도산공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이자 민족계몽운동가였던 도산 안창호(1878~1938)선생의 75주기 추모식이 9일 오전 11시 도산공원(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에서 열렸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백낙환)와 흥사단(이사장 반재철)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광복회원, 흥사단원, 학생,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추모식은 윤경로 도산학회장의 약전봉독, 백낙환 기념사업회장의 추모식사, 국가보훈처장·광복회장·흥사단이사장의 추모사에 이어 압구정여성합창단의 추모가 제창과 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됐다.

 

◈ 도산 안창호 선생 공적 ◈

 

안창호 선생(1878.11.9~1938.3.10)은 평남 강서에서 출생했으며,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자주독립과 국민의 자각을 호소했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됐으며, 1905년 동 회를 공립협회로 재창립하여 초대회장에 취임, 공립신보를 발행했다.

1907년 귀국,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여 구국 운동을 전개했고, 1909년에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했다.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13년에 “흥사단”을 조직하여 민족계몽운동과 국권회복 활동을 펼쳤다.

1919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파리강화회의에 국민회 대표 파견 계획을 추진하다가,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하여 연통제 실시, 독립신문 발간 등 독립운동의 방략을 지도하였다.

1923년에는 “대독립당”을 결성하고, 1924년에는 남경에서 동명학원을 설립하여 실력배양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1930년에 “동인호조사”(同人互助社)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합심 협력을 기획하였고, 1931년 1월에 흥사단 제17회 원동대회를 주재하여 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흥사단보를 발행하는 등 국민의 자질혁신과 청년 인재양성 등 흥사단의 이념 구현에 주력하였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병을 얻어 동년 12월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38년 3월 순국하였다.

순국 후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현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