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자치신문 칼럼]러시아에도 봄이 올까?
러시아도 그렇다. 부패순위가 143위로 나이지리아, 우간다 수준이라니 권력층의 부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이미 대통령을 2번 씩이나 하고 그다음 드미트리 메드베네프 대통령에게 인계하며 총리로 앉았지만 실세였다. 그런데 다시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거
러시아 국민들은 더 이상 푸틴의 통치를 원치않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정권교체를 원한다. 푸틴의 초기집권 시절 오일 달러와 자원수출로 경제가 따뜻했다. 당연히 푸틴의 인기는 상승하였고 한 번씩 상체를 드러내며 육체미를 과시할 땐 여성들의 인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 정도에서 그치면 영원히 전설처럼 남을텐데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고 부정선거도 감행한다. 멀리갈 갈 것도 없이 이승만, 박정희만 봐도 된다. 만약 그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역사는 얼마나 밝으며 자랑스럽겠는가. 모스코바에선 5만에서 10만에 이르는 군중이 모여 분노의 항의를 하였고 상테르부르크 같은 지방도시에서도 몇만이 모였다고 한다. 아무리 공산주의고 철권통치를 한다지만 요즘처럼 SNS가 발달되어 있으면 비밀유지도 어렵다. 이미 부정선거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쏟아지고 갖은 방법이 동원된 것도 드러났다. 한국인들에겐 익숙한 초보적 부정이다. 3.15 부정선거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기억하기도 싫은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 한국은 제 4대 대통령 선거와 5대 부통령 선거가 실시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고령이라 자유당은 유사시를 대비하여 부통령 자리를 확보해야 했다. 공무원과 겅찰 동원은 기본이고 동사무소, 조폭까지 등장했다. 기표소 안에까지 들어 가서 확인도 하고 미리 투표지에 기표한 것을 투표함에 넣어 두기도 했다. 부정을 너무 한 탓에 100%가 넘는 코미디도 나왔다. 다시 조정하여 대강 80%에 맞추어서 결론을 내렸지만 민심은 이를 수용하지 않아 결국 4.19 혁명을 맞이했고 이기붕 일가는 아들 이강이 쏜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러시아 선거는 대선이 아닌 총선으로 열기가 약하지만 불씨는 늘 살아 만약 대선에서 이런 사태가 재발된다면 그 땐 정말 알 수가 없다.
이미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성공해 본 경험을 가진 나라이다. 경제 역시 불안하여 젊은이들의 분노가 도를 넘었다.
그런데 상층부는 부패하고 예사롭게 부정을 감행하니 젊은이들은 분노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시위는 세계적 추세이다. 월가를 점령하려는 미국, 중동, 유럽, 러시아 등 젊음은 저항의 깃발을 내리지 않는다. 한국도 그 대열에 속한다.
이번 사태가 러시아의 봄을 예단하지 않을지 모르나 큰 의미를 함의한 시위임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