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리뷰] 누군가에게는 꿈, 누군가에게는 현실 ‘버지니아 울프’

2024-05-23     박지현 객원기자
▲ 뮤지컬 '버지니아 울프' 공연사진 ㅣ 제공 할리퀸크리에이션즈(주)

일터에서 해고당하고 월세도 몇 달 치나 밀린 데다가 마땅히 손 벌릴 사람 하나 없고 출판사에 보내는 원고는 족족 거절당하는 청년 조슈아는 어느 날 물에 빠졌다 정신을 잃은 여자를 발견해 자신의 다락방으로 데려오게 된다. 깨어난 여자는 자신의 이름은 애들린이며 조슈아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신이 지은 소설 속이라고 주장한다.

뮤지컬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꿈, 누군가에게는 현실인 세계를 그린다. 그 세계로 관객을 데려가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무대 구성이다. 무대의 배경은 기본적으로는 조슈아의 다락방이다. 먼저 다락방의 구조를 살펴보면 서재와 책상, 문, 침대, 옷장과 창문 등이 실제로 집에 놓여 있을 듯한 위치와 구도에서 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어느 하나 이유 없이 그 자리에 놓인 것이나, 그저 있을 법해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품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배경 세트가 열리며 꿈과 현실을 분리하고 조명과 함께 공간을 변화시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의 모습은 비슷한 규모의 공연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 뮤지컬 '버지니아 울프' 공연사진 ㅣ 제공 할리퀸크리에이션즈(주)

‘버지니아 울프’는 이 다락방을 배경지 삼아 런던의 풍경이나 전화 부스, 바닷가의 전경이나 불꽃놀이까지도 따스하고 몽환적인 색감을 가진 영상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애들린이 어떤 풍경을 자신의 작품 속에 그려냈는지 관객들로 하여금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상미가 무대와 어우러지며 특히 돋보이는 장면은 세인트 아이브스의 바닷가에서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무대는 바닥까지도 아름답고 섬세하게 제작되었는데, 극장의 반원형 무대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해변의 파도가 밀려오며 만들어 내는 물의 곡선들을 형상화하여 관객을 향해 굽이치는 형태로 만들었다. 곳곳에 심긴 풀이나 놓여있는 돌 등의 배치도 절묘하다. 그러한 무대 바닥은 계단식의 단차를 두어 조슈아의 다락방에 높이를 주고,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해 주는 역할을 하면서 바닷가에서는 무대 전체에 뿌려지는 영상에 힘입어 더욱 꿈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배우들의 호연 역시 서사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공연의 전면에 등장하는 배우는 공연이 시작되면 그 누구보다 무거운 무게를 진다. 단 두 명의 등장인물만이 나오는 뮤지컬에서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은 한층 더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에서 원래의 연륜과 경험을 가지고 십여 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주인공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 역은 박란주가 맡아 마침내 삶의 고통스러움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게 되는 ‘애들린’을 훌륭한 연기와 가창력으로 무대 위에 살려냈다. 또한 ‘조슈아 워렌 스미스’ 역의 황순종 역시 때로는 치기 어린 청년의 모습을, 때로는 고뇌하는 작가 지망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인물 소개는 기자가 관람한 회차 캐스트 기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