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드] 업그레이드된 ‘빵야’와 함께 행복하기… 최정우는 지금 공연을 사랑하는 중입니다②

필모그라피 인터뷰_‘끊임없이 성장하기’의 필수 조건, 좋은 작품 만나기

2024-06-11     김희선 객원기자
▲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사랑하면서, 소중하고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는 작품, ‘빵야’

2022년 ‘빵야’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도 함께하게 됐는데요. ‘빵야’와는 어떻게 만났고, 재연에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제주도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지연이 돼서 공항에 앉아있었어요. 그때 (김)태형 연출님이 문자로 ‘창작산실 쇼케이스가 있는데, 리딩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주셨고 그렇게 ‘빵야’ 대본을 받았어요. 받아서 읽는데 텍스트가 정말 좋고 천재적인 거예요. 영화처럼 넘어가는 지점들이 있었고, 빵야의 독백을 읽으면서 ‘와, 이거 누가 어떻게 할까?’ 생각도 했고요. 쇼케이스 후에 LG 아트센터에서 한 초연에도 참여하게 됐는데 정말 사랑하면서, 아주 소중하게 연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초연에 이어 (이)진희 누나나 (오)대석 선배님, (김)세환이 형, 태형 연출님 등 초연 멤버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재연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죠. 초연 멤버들이 있다는 게 저한테는 정말 큰 안정감을 줘요.

모든 극이 그렇지만 ‘히스토리 보이즈’, ‘엠. 버터플라이’, ‘빵야’ 모두 역사적인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작품이죠. 특히 ‘빵야’의 경우 한국 근현대사가 담겨 있잖아요. 초재연 모두 ‘빵야’와 함께 하면서, ‘빵야’가 담고 있는 슬픈 역사와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며 연기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거나, 인상 깊게 가슴에 남은 장면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당연히 신출이한테는 정이 1도 없고요(웃음), 길남이에게 애정이 많이 가는데, 배우로서는 길남이와 신출이의 대비를 보여드리기 좋다고 생각하죠. 또 그 상황, 장면마다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관객분들이 밖에서 바라봤을 때는 역사적인 일들이지만, 그 순간 책임감을 갖고 극 중의 등장인물로서 하고있어요. 

제가 5살 때부터 11살까지 제주도에서 살았거든요. 유년 시절을 거기서 보냈기 때문에 제게 ‘고향’이라고 하면 제주도라고 생각해서 (4.3도)알고 있어야 할 역사였죠. 그래서 초연 때 제주도 친구에게 대사를 사투리로 녹음해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친구가 할머니께 그 시대 사투리를 여쭤봐줬고, 알아듣기 어려운 걸 다듬어서 만든 부분들도 있고요. 만들 때도 다들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공부도 많이 하면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쉽게 다룰 만한 장면들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래서 모든 장면이 다 좋아요. 엄청 소중하고 아름답게, 열심히 만들었고 배우들의 합이 굉장히 좋아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마지막 오케스트라 장면이 제일 가슴을 울리는 것 같아요. 빵야의 독백들도 그렇고요.

▲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그렇다면 재연으로 오면서 바뀐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빵야’ 초연 멤버로서 재연에서 달라진 부분과 새로 합류한 배우들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해주세요.

일단 캐스트가 늘었고, 새로 합류한 배우분들이 많다는 게 아무래도 제일 큰 변화죠. 의상도 바뀌고. 다 같이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많이 고민하면서 만들었어요. 바뀌었다기보다, 큰 흐름과 중심은 그대로 두고 더 ‘업그레이드’ 됐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캐스트가 다양하니까 그만큼 다양한 매력과 새로운 에너지가 있어요. 제가 초연의 하성광, 문태유 빵야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연습 초반에는 빵야의 목소리가 그분들로 들렸거든요. 그런데 연습이 진행되면서, 제 안에 다른 빵야들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이번 빵야 배우분들도 정말 사랑하게 됐어요. 

우선 박성훈 선배님은 엄청 멋있어요. 대본을 거의 제일 먼저 다 외우신 것 같은데, 빵야에 정말 잘 어울려서 감탄했죠. 락우드 선배님이시기도 하고(웃음). 또, 전성우 형님의 빵야는 어떤 깊이감이 있어요. 연습하는 걸 보면서 많이 놀랐고, 빨리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박)정원이 형 빵야는 ‘빵야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이런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요. (홍)승안이 형은 순간순간 치고 나오는 날 것의 감정들이 생각도 못하게 좋은 부분들이 많아서, 모두 다른 매력과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거기다 제가 (이)진희 선배님 정말 좋아하거든요(이 얘기 꼭 써주세요.), 초연을 하신 데다 연기를 워낙 잘하시니까 안정감이 있는 나나고, (김)국희 선배님이랑 (전)성민 선배님도 정말 매력적이에요. 또, 제가 (곽)다인이랑 알고 지낸 지 10년 됐는데 같은 역할을 처음 하거든요? 다인이가 만들어내는 역할 보고 감탄도 하고, 함께 하니까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진짜 빵야 네 분, 나나 세 분, 거기다 더블들까지 다 보셔야 해요. 전캐 꼭 찍으셔야 해요. ‘빵야’가 정말 좋은 작품이니까 이러는 거예요(웃음).

‘빵야’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웃으시네요. 정말 행복하게 연습 중이신가 봐요.

극이 좋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텍스트가 좋고 공연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분들과 만나 함께 머리 맞대고 만들어내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연극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2024년 현재의 관객들이 ‘빵야’를 봐야 하는 이유, 그리고 ‘빵야’를 무대에 올리는 배우로서 이 극을 봐주길 바라는 이유가 있다면요?

빵야가 네 명이고 나나가 세 명이고…(웃음). 아니, 이건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거고요. 전캐 다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가 담겨있고, 슬프고 힘든 사실들이 담겨 있는데 김은성 작가님의 글이 굉장히 아름답게 쓰여졌어요(희곡집도 있으니 꼭 보세요. 삽화 제가 그렸어요!).

‘빵야’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아야 하는 부분들이고,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들이며, 또 잊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기도 해요. 그런 것들을 다루면서 드라마도 잘 구축되어 있고, 매력적인 배우들이 3시간 가까이 에너지를 쏟아내는 데다 음악이나 조명, 무대 등 외적인 부분에서 보기에도 다양한 지점들이 있죠. 무엇보다 빵야, 나나와 함께 하는 순간들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이 극이 역사적으로 무거운 작품은 맞지만, 단순히 무겁게만 느끼게 하지 않는 아름다운 극이에요. 어쩄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역사니까 알아야 할 부분이고요. 초연 때는 ‘원캐’였으니까 공연을 못 봤는데, 중계를 보면서 느꼈어요. ‘내가 지금 이 작품 안에 있구나, 되게 행복하구나.’ 그러니까 여러분도 꼭 보러 오세요.

▲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최정우, 지금 공연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제 ‘배우 최정우’에 대해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데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장점은 잘 모르겠고, 단점은 장점 외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장점은 작품을 할 때마다 좋은 선배님들, 연출님들 만나면서 하나씩 쌓여가는 것 같고요. 대신 제가 추구하는 건 ‘무대 위에서의 솔직함’이에요. 주변에서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정우가 연기하고 말할 때에는 대사에 진심이 담긴 솔직함이 느껴진다”고. 저랑 ‘연애플레이리스트’에서 만났던 (이)원준 형과 몇 년이 지나 ‘엠. 버터플라이’에서 마끄와 송으로 다시 만났는데요. 원준 형이 마지막 공연 끝나고 “네 장점은 스펀지 같은 거다, 누가 말해준 것들이나 다른 좋은 것들이 보이면 스펀지처럼 바로 흡수해서 네 걸로 만들어 거짓 없이 보여주고, 너대로 보여주는 그게 너의 무기다”라고 말해줬는데, 그 말을 듣고 많이 행복했죠. 저는 모든 걸 다 열어놓고, 꽉 막혀있지 않은 상태로 조언이든 디렉팅이든 모든 걸 다 최대한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만 하고요. 사실 저는 연기 전공이 아니라서, 연기를 늦게 시작한 데 대한 조바심 같은 건 없는데요. 대신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여러 연기론이나 기법도 찾아보면서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면 혹시 앞으로 해보고 싶은 극이나 역할이 있을까요? 가불가를 떠나, ‘배우로서 이 극, 이 역할은 정말 욕심난다!’ 싶은 역할 같은 거요.

제가 정말 일부러 이렇게 대답하는 건 아닌데요(웃음). 진지하게 다 해보고 싶어요. ‘엠. 버터플라이’하면서 그런 걸 느꼈어요. ‘저랑 너무 안 어울린다, 너무 어려울 것 같다, 너무 부담되는 역할이다’라고 생각되더라도, 기회가 오면 일단 해봐야 한다는 걸요. 그런 의미에서 ‘엠. 버터플라이’가 정말 넘어야 할 산이 많았던 작품인데, 작품을 하면서 넘어온 그 모든 과정들이 제게 참 중요했던 것 같아요. 연기 생활에 대해 더 진지해지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됐죠. 

데이킨도 그렇고 송 릴링도 그렇고, 극을 이끌어가는 긴 호흡의 중요 인물을 맡았다가 ‘빵야’에서 길남이 역할을 하는 걸 두고 ‘멋지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는데요. 저한테는 다 똑같아요. 데이킨, 그리고 송 역할을 했다는 거, 주인공이다, 비중이 큰 역할이다, 그런 게 이후의 작품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아요. 작품이 좋고 텍스트가 좋으면 그 안에 있는 것 자체로 좋거든요. 좋은 작품이면 어떤 역할이든 하고 싶어요. 물론 이제 서른(만 29세지만요)이 되니까 선택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좀 드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데, 그 시간들을 좋은 작품으로 채우면 헛되지 않다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빵야’ 같이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 이런 게 다 제 시간 속에 쌓이는 거고 행복한 기회이자 재산이 되는 거죠.

이제까지는 매체와 무대를 병행하며 여러 활동을 해왔잖아요. 앞으로는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지, 또 ‘배우’ 최정우로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답변이네요.

‘엠. 버터플라이’ 끝나고 좋은 연극에 많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좋은 텍스트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극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스스로 멀리 봤을 때, 연극을 계속 하면서 저라는 배우를 좀 컴팩트하게 단련시키고 싶어요. 그리고 방향성은 사실 장기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한 1년 정도씩 단기로 목표를 세우는 것 같은데, 어떤 연극을 하더라도 제게는 첫 걸음으로 느껴져요. 물론 궁극적인 방향성은 ‘좋은 배우’가 되는 거겠지만, 디테일한 부분들은 작품을 하면서 나이테를 채워나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물론 공연하면서 매체를 병행하는 게 목표이긴 한데, 어쨌든 지금은 공연을 더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연극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데뷔 후 처음 했던 인터뷰에서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라고요. 2018년 인터뷰로부터 어느새 6년이 지났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나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웃음). 음, 시간이 많이 지나고 읽어서 그런지 귀엽던데요. 아마 제가 6년 뒤에 이 인터뷰를 읽게 되면 그때도 또 귀엽다고 느끼겠죠? (좀 뻔한 전개지만, 6년 전의 최정우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요?) ‘너 참 귀엽다(웃음). 우선 시작을 해서 다행이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거쳐오다 보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도 영화를 보며 많은 공부를 했다는 최정우에게, 인터뷰 마무리로 ‘2024년 6월 현재의 최정우’를 대변하거나 대표할 수 있는 영화를 하나만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장장 30분이 넘는 장고 끝에, 그는 하나의 작품 대신 세 작품의 장면을(스스로의 선택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기색으로) 골라주었다.

#1. ‘위플래쉬’

플레처(J.K.시몬스) 교수의 압박에 시달리던 주인공 네이먼(마일스 텔러)이 텅 빈 연습실에서 손에 피가 날 때까지 미친 듯이 드럼을 연습하는 장면

#2. ‘아웃핏’

아웃핏의 결말부, 레오나드(마크 라이런스)가 양장점을 불태우며 대사를 읊는 장면부터 그의 마지막 대사("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받아들여야죠. 어떻게요? 글쎄요. 작업대에 앉아서 도구를 꺼내고 다시 시작해야죠."까지)

#3.’LA 컨피덴셜’

엑슬리(가이 피어스)의 마지막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