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드] ‘소심하고 내향적인 야망가’ 김단이를 소개합니다①
초등학교 3학년, 처음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 소녀가 있었다. 실용무용부터 힙합까지 가리지 않고 춤을 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녀는 아이돌을 꿈꾸게 됐다. “친구는 언제라도 사귈 수 있어, 꿈을 이루는 게 1순위야!” 그렇게 악착 같이 노력한 덕분인지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고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기쁨도 누렸다. 하지만 동경해 온 세계는 꿈꿔왔던 것과는 달랐다. 한 여름밤의 꿈 같았던 짧은 활동 기간이 끝나고, 혼란에 휩싸였던 소녀는 쏜살 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나만 아무 것도 되지 못했어. 그럼 지금까지 내가 투자한 시간은 뭐가 되지?” 그게 겨우 10대 후반, 고등학생 때였다. 입시를 앞두고 아이돌, 더 나아가 가수의 꿈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소녀는 친한 언니가 데려가 준 예능 프로그램 방청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지금의 우리가 ‘뮤지컬 배우’ 김단이(25)와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아주 특별한 전환점이었다.
여우비가 내리던 지난 7월의 어느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김단이를 만났다. 김단이는 2021년,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테아 역으로 데뷔한 뒤 '드롭스'의 루시, '앤ANNE'의 앤1, 그리고 '비아 에어 메일'의 메일보이를 거쳐 '이블데드'의 셰럴로 대활약 중이다. 하지만 이제 갓 데뷔 3주년을 맞은 따끈따끈한 신인이기 때문인지, 그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마주 앉은 김단이에게 말했다. “이번 인터뷰를 ‘김단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우인지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자”고.
데뷔작이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 3연에서 처음 봤는데, 당시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어요. 원래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는지, 또 어떻게 데뷔하게 됐는지 그 이야기부터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어릴 때부터 춤을 추다 보니 아이돌이 꿈이었는데 데뷔할 기회가 일찍 찾아왔어요. 그런데 가수 활동이 잘 안 풀렸죠. 계약을 좀 빨리 끝내고 그 뒤로도 준비를 계속했는데 어느 순간 주변 친구들은 다 데뷔하고 저만 남은 거예요. 그래서 좌절도 많이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가, 가수의 꿈을 접고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왔죠.
어쩐지 춤을 굉장히 잘 추더라고요. 입시를 뮤지컬로 준비한 건가요?
그때 주위에서는 ‘연기를 한 번 해봐라’는 권유가 많았는데, 저는 지금까지 해온 게 있으니까 무조건 ‘노래와 춤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대를 해야 한다’고 버텼거든요. 그때까지 연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쉽게 안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같이 학원을 다니던 언니가 '슈가맨' 방청에 당첨이 돼서 같이 보러 갔는데, 그때 방송에 나왔던 게스트분을 보고 첫눈에 반한 거예요. ‘저 분과 같은 직업을 갖고 싶다, 같은 직업을 갖게 되면 나도 저 분처럼 빛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 분이 바로 차지연 배우님이었어요(웃음).
그럼 그 순간,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거예요?
방송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잖아요, 그때 냅다 차지연 배우님께 고백했어요. ‘언니 같은 뮤지컬 배우가 될테니 기다려달라!’고요. 아마 기억 못하실텐데(웃음) 배우님이 ‘기다리고 있을게, 열심히 해’라고 말해주셔서 그날 바로 결심했죠. 나, 뮤지컬 할래!
패기 넘치는 고백에 실행력까지 갖췄네요(웃음)
그때부터 연기학원에 등록해서 뮤지컬과로 입시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노래에는 재능이 없는 편이라, 데뷔 준비할 때도 노래는 포기하고 랩을 했었거든요? 학원 선생님들도 ‘넌 노래를 못하니까 뮤지컬은 절대 못한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분’과 함께 무대에 서려면 저는 반드시 뮤지컬을 해야 하잖아요. 학원에 1등으로 가서 마지막으로 나오기를 몇 개월 동안 계속하면서 그야말로 죽어라 연습을 했어요. 모의평가 때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더니 선생님들도 ‘이 정도면 뮤지컬과 써도 되겠다’하고 인정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뮤지컬과에 입학도 했고요.
일찍부터 꿈에 대한 목표를 세운 것도 그렇고, 구체적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들도 그렇고 정말 범상치 않은 아이였군요?
제가 원래 목표가 있어야 그 목표를 향해 추진력을 낼 수 있는 성격이에요(웃음). 그런데 하필 그때 딱 코로나19가 터져서 볼 수 있는 오디션이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바로 무대에 서고 싶어서 학교 선배인 (조)형균 선배님께 상담도 했었는데, 선배님이 오디션을 바로 보라고 조언도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콩쿨도 나가고 계속 목표를 만들면서 전진 중이었는데, 그때 '스프링 어웨이크닝' 오디션 공고를 보고 ‘이건 무조건 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오디션은 어땠어요?
사실 오디션은 대차게 망쳤어요. 목을 너무 열심히 풀어서 노래를 망쳤거든요(웃음). 대신 춤을 열심히 추자! 하고 열과 성을 다해서, 거의 쥐어뜯으면서 안무를 했더니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대사랑 안무는 에너지 있게 잘하면서 노래는 왜 그렇게 하냐’고 하시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결국 또 한 번, 바라던 꿈을 이뤄낸 거네요.
데뷔를 하고, 꿈꾸던 직업을 가졌을 때 어쩔 수 없이 환상이 깨지고 현실과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제가 알잖아요. 그런데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하면서 무대와 관객이 함께 호흡한다는 게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운 좋게 그 감각을 데뷔 때부터 알아버린 거죠. 그래서 ‘이제 난 이걸 평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이 나온 김에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비아 에어 메일' 마지막 공연 인사 영상을 보고 ’배우 김단이’를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잘하는 김단이라는 배우가 왜 뮤지컬을 그만두려고 했는지, 또 왜 그렇게 울었는지 궁금해졌거든요.
아무도 안 믿으시는데, 제가 원래 눈물이 없는 타입이에요. 엄마가 냉혈한이라고 할 정도라니까요? 그런데 공연만 하면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비아 에어 메일' 때도 사실 눈물은 전날부터 났어요(웃음). 사람들의 다정함을 얘기하는 따뜻한 작품이고, 함께 한 언니오빠, 스탭분들, 창작진 여러분 모두가 정말 다정한 사람들이었거든요. 이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게 너무 슬펐어요. 물론 다른 작품에서 만나겠지만 지금의 나로서, 또 그들로서 우리가 이 작품으로 만나는 건 그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보내기가 정말 아쉬웠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막공날에 ‘절대 안 울 거다, 안 울어도 실망하지 말라’고 선전포고를 했거든요? 언니오빠들이 ‘두고 보자’했는데… (웃음).
그만두려고 했던 이유는… 무대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인간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더 정확히 얘기하면 만나고 헤어지는 걸 반복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공연하는 건 정말 좋은데 계속 헤어져야 한다는 게 참 힘들어서, ‘내 성격과 이 직업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일찍 사회를 경험해서 그런지 제가 좀 철이 일찍 든 편이에요. 사회 생활이라는 게 워낙 이래저래 많이 치이는 부분이 있잖아요. 거기다 주위에서 ‘너는 오래 못 할 거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면 될 일인데 마음이 약해져있을 때에는 그런 말에도 동요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두고 봐라, 후회하게 해줄게!’ 이런 오기도 생겼지만요(웃음).
'스프링 어웨이크닝' 이후, '드롭스'와 '앤' 공연을 마치고 '비아 에어 메일'까지 1년 정도 공백이 있더라고요.
당장 잡혀있는 공연도 없고, 볼 오디션도 없으니까 ‘새로운 일을 찾아봐야겠다’ 생각했죠. 실제로 다른 일을 찾고 있던 와중에 '비아 에어 메일'에서 연락이 와서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해주셨어요. 그렇게 대본을 받아서 처음 읽는데, ‘메일보이’라는 역할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젊은이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떻게든 내가 이 역할을 잘 해보고 싶다, 이 캐릭터가 할 수 있는 많은 얘기들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런 생각에 더 열심히 고민하고 애착을 가지면서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 많이 담겨있고, 제 성격이랑 너무 많이 닮기도 했고요(웃음). 아마 앞으로 무대에 서서 연기하는 모든 순간에 그 역할과 그 작품이 계속 잔잔하게 제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 같아요.
‘메일보이’가 자신의 성격과 많이 닮았다고 했는데, 원래 성격이 어떤지 궁금해요. 굉장히 솔직하고 쾌활해보이는 인상인데,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느낌도 들거든요.
지금까지 제가 맡아왔던 캐릭터들은 밝고, 꿈과 희망이 가득차고 생기발랄한 역할이 많은데요. 사실 저 의외로 차분하고,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리고 소심해요. 데뷔를 일찍 해서 철이 일찍 들다보니 애늙은이 같단 얘기도 많이 들었죠. MBTI 검사를 해도 다른 건 몰라도 I는 변함이 없어서 내향인인 건 확실해요. 쉬는 날에는 집밖으로 거의 안 나가고 침대와 한 몸이 되죠. 공연보러 온 친구들이 무대 위의 저를 보고 놀랄 정도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