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ON] '박열' 백기범, “여전히 뜨겁게 불타오르는 '박열' 저는 그분의 매개체일뿐” ①

2024-08-08     김수현 기자
▲ 배우 백기범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 뮤지컬 <박열>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Q. <박열> 초연 때 인터뷰를 하려다가 불발됐는데, 3년 만에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됐네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2013년도에 데뷔한 뮤지컬 배우 백기범이고요, 본명은 조성재입니다. 91년생 만 나이로 33살이고 기혼입니다(웃음). 3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Q.지난달 16일 뮤지컬 <박열> 첫 공연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셨나요?

무대에 오르기 전 첫 번째 장면을 생각하면서 감정을 차갑게 유지하려고 했는데 등장하자마자 관객들 얼굴을 보는 순간 도파민이 확 하고 터졌어요. 한 분 한 분 얼마나 또렷하게 보이던지. ‘박열’ 선생님이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세상에 나오신 것처럼, 3년 만에 관객분들을 마주하니 복귀했다는 실감이 났어요. 열심히 정신없이 공연을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는 솔직히 기억나질 않아요(웃음). 그리고 7월 16일이 제가 3년 전에 첫 공연을 했던 날이더라고요, 신기했고 완벽한 수미상관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Q. 무대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뮤지컬 <박열> 어땠나요?

실존 인물을 캐릭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뜨겁게 불타올랐어요. 그분이 했던 모든 감정이 느껴졌고 와닿았고 저는 매개체가 되어서 그분을 표현할 뿐인 것 같아요.

Q. 오랜만에 무대에 서기 위해서 준비하셨던 점이 있다면요?

<박열> 영화를 다시 보고, 3년 전에 했던 리허설 영상도 봤어요. 재미있게 봤는데 이때만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어요. 그때보다 살이 10kg 더 쪄서 저렇게 뛰어오를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웃음). 프로필도 찍어야 하니 디데이를 설정해 두고  10kg 정도 뺐는데,  목표에 도달하니까 더 빠지지가 않아서 앞으로도 좀 더 빼보려고요.

Q. 오랜만에  연습은 어떠셨나요?

너무 열심히 준비했더니 첫 장면 시연 후에 다들 “너 집에 가라” 그러시더라고요(웃음). 연습실에 있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 저는 더 하겠다고 했어요. 함께 하는 손유동 배우나 현석준 배우도 늘 진정성 있게 연습했고 제 해석이라든지 의견도 많이 물어봐 줘서 고마웠고요. 연습실 분위기는 최고였어요.

특히 (현)석준이는 친한 친구인데(웃음). 오랜만에 돌아오는 작품이 <박열>이고 석준이랑 같이해서 의미가 깊었는데, 합류를 결정하고 대표님께 캐스팅을 물어보니 석준이가 하기로 했다는 거예요. 얼마나 됐냐니까 좀 됐다고 하셔서 전화를 걸어 “공연 하기로 했으면서 왜 말도 안 하냐?” 했더니 “그냥~” 그러더라고요. “많이 도와줘라 너만 믿는다” 이래서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너무 잘하고 있죠.

▲ 배우 백기범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Q. ‘박열’ 하면 ‘후미코’가 빠질 수 없는데 이정화 배우, 최지혜 배우 새로 합류한 박새힘 배우까지 각각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정화 누나는 쓰러지지 않는 제일 단단한 동지 느낌이고, (최)지혜는 만나면 유독 너무너무 슬퍼요. 저번 시즌에도 말했지만 제 눈물 버튼이에요. (박)새힘은 신선한 ‘후미코’ 셋 중에서 제일 어린 느낌의 ‘후미코’라서 더 안쓰러운 느낌이 있어요. ‘박열’ 역은 저만 초연 멤버이고 ‘후미코’는 새힘이만 새 멤버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새힘이랑은 작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에필로그 시작할 때 ‘후미코’들이 “열~”하고 나타나거든요. 그때 회상으로 들어가면서 진짜 후미코가 내 앞에 있는 느낌을 받고 눈물이 제일 많이 나요. 그런데 새힘이랑은 “우리가 지금 집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신은 내 옆에서 책 보고 있고”라는 대사 중간에 눈물이 터져버렸어요. 연습이 진행이 안 될 정도로 울었고 그 순간 새힘 ‘후미코’가 이 시대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누구보다 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을 텐데 나와 함께 빛을 보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에 안쓰러웠던 기억이 나요. 가장 어리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아요.

Q. ‘후미코’가 기다리지 않고 세상을 떠났을 때 ‘박열’은 무슨 감정이었을까요?

이유조차 모르니까 굉장히 괴로웠을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그래서 에필로그 직전에 새로운 넘버에서 나는 살아서 증명하겠다, 살아서 당신의 우리의 의지를 터트리겠다. 생명력으로 당신의 삶을 증명하겠다고 말하거든요. 죽음보다 힘든 삶이지만 괴로움도 견디고 살아냄으로 증명하겠다는 그 마음 참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Q. 제일 좋아하는 넘버나 장면이 있으실까요?

넘버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는데, ‘불꽃처럼’을 제일 좋아해요. 가사도 멜로디도 이 극을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장면은 에필로그를 제일 좋아해요, 초연에는 에필로그 때 사진 찍는 신이 없었고 공연 중간쯤 있었거든요. 제가 뒤로 빼서 지금처럼 만들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어요. 바뀐 장면을 좋아해 주시기도 하고 감동도 많이 해주셔서, 지금까지도 뿌듯한 마음이 있고 또 포스터도 제 뒷모습으로 계속해 주셨는데(웃음). 작은 자부심도 생기고 ‘박열’ 하면 저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신 것 같아서 제작사에도 감사드려요.

Q. 오랜만에 돌아온 백기범이 ‘박열’에게 한마디 건넬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지?

뻔하지만 너무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죠. 만약 술자리처럼 이야기가 무르익었다고 하면 평소에 좀 궁금하던 게 있긴 했어요. 왜 결혼을 한 번 더하셨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었어요. 물론 지금은 여쭤볼 순 없지만요(웃음).

Q. 백기범에게 무대란 어떤 의미인지 다시 느낀 부분이 있다면?

식상한 표현일 것 같은데,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조명 아래에서 마이크를 차고 무대에 오르고 무대 위에는 마킹테이프들이 있고 그리운 내음. 3년 전과 같은 공연장에서 같은 세트에 올라서 고향에 온 느낌이었어요. 잊지 않았던 제 삶이죠.

Q. 뮤지컬 <박열>을 봐야 한다는 이유가 있을까요?

한국인이면 꼭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공연도 올라오고 연극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된 이유가, ‘박열’이나 ‘후미코’ 같은 분들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한국인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보러 오세요(웃음). ‘박열’에 빙의해서 말한다면 “그대여 아직도 안 봤는가” 라고 하면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