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콜] 세 번째 시즌 맞은 ‘킬롤로지’, 무대라는 우주 위를 떠도는 세 개의 행성

2024-10-03     김희선 객원기자
연극 '킬롤로지' 프레스콜 단체사진 ㅣ 사진 김수현 기자

“각자의 세상에서 사는 배우들 세 명이 우주 속 행성처럼 서로 만나고 말하고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게 이번 시즌에서 가장 표현하고 싶은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킬롤로지’가 돌아왔다. 2018년 초연 때부터 밀도 높은 텍스트와 강렬한 연출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킬롤로지’가 2019년 재연 이후 5년 만에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연극열전10’ 세 번째 작품으로 돌아온 ‘킬롤로지’가 2일 서울 대학로 TOM 2관에서 프레스콜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프레스콜에는 초연부터 ‘킬롤로지’ 연출을 맡은 박선희, 살해당한 아들의 복수를 결심한 '알란' 역 배우 김수현, 이상홍, 최영준, 게임 개발자 '폴'역의 배우 임주환, 이동하, 김경남 그리고 살해된 아들 '데이비'역의 배우 최석진, 안지환, 안동구가 참석했다. 

'킬롤로지'는 영국 극작가 게리 오웬의 작품으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가상의 온라인 게임 '킬롤로지'를 소재로 폭력의 근원과 책임을 묻는 작품이다. 게임과 똑같은 방식으로 현실에서 살해된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 게임의 개발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독백하는 형식의 3인극이다. 인물들의 관계와 상황, 사건에 대한 단서는 등장인물들이 가끔 상대방과 마주치는 잠깐의 순간을 통해 드러난다.

2018년 초연, 그리고 2019년 재연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두드러지는 변화는 무대의 변화에 따른 배우들의 동선 변화다. 초연과 재연 모두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올렸던 과거와 달리, 이번 3연은 TOM 2관에서 상연된다. 전체적인 극의 방향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무대가 좁아지고 객석과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무대 디자인과 세부적인 연출에서는 차이가 눈에 띈다.

연극 '킬롤로지' 박선희 연출 ㅣ 사진 김수현 기자

초연, 재연에 이어 다시 한번 ‘킬롤로지’의 연출을 맡은 박선희는 무대의 변화에 대해 “어둡고 음습한 무대는 예전보다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낙서와 기억, 기록들이 꽉 채우고 있는 무대 자체가 말하고 있듯 배우들 세 명은 각자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라며 “우주에서 행성들이 궤도 내에서 움직이듯이 한 명이 말하고 있을 때 다른 배우들이 움직이고, 그러다 서로 만나고, 말한다는 것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표현하고 싶은 부분일 수 있겠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곳(무대)은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세 사람의 공간이다. 그들은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돌고 있기 때문에 잠시 만나는 그 순간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물론 폴과 데이비는 한 번도 만나지 않지만, 이런 부분들이 이 공간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세 명을 다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부연하며 “관객들이 자신의 흐름대로 많은 틈을 열어서 자신만의 공연을 즐기고 가져갈 수 있길 바라며 만들어봤다”라고 덧붙였다.

재연 이후 5년 만에 돌아왔지만 ‘킬롤로지’가 상연되는 세상은 이전의 세상보다 결코 더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킬롤로지’의 주된 소재인 게임과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박 연출은 “5년 전보다 지금 더 이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지 않을까 한다”라며 “학교폭력을 포함해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을 생각하면 지금 이 극이 주는 메시지는 더 강력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언어적인 폭력(욕설)은 지금과 맞닿지 않을까 싶어 일부 사용한 부분이 있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직접적인)폭력 자체는 보여주지 않는 등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극 내에서 사용되는 폭력적인 장면들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 폴 역의 임주환은 “이 극이 관객들에게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게 바로 (연기하는)저희의 목적이다. 그렇게 느껴지셨다면 저희가 연기를 잘한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박 연출은 “이 작품은 3인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저는 이게 3개의 1인극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공간적으로 알란, 폴, 데이비가 각자 자기 해석을 가미해서 캐릭터를 만들고 움직여야 하고, 자신의 공간에서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 많다. 세 명이 1인극을 하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중간에 자르고 들어오고 하는 구성 자체가 관객들에게는 영상적인 방식으로 더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알란 역의 김수현을 제외하면 모든 배우가 이번 ‘킬롤로지’ 3연에 처음 참여한다. 알란 역 이상홍은 “솔직히 말해서 처음 제안 받고 대본을 봤을 때 ‘이런 공연을 왜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대본을 보니 폭력성에 가려져있던 이 작품의 따뜻함과 아픔, 그리고 인물들이 보였다. 이 작품의 이면을 더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라고 합류 이유를 밝혔다.

폴 역의 김경남은 “폭력이나 사회적 문제 외에도 세 인물의 결핍을 다루는 극이다. 그래서 연기하는 동안 인물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끌어낼 수 있도록 고민하며 접근하고 있다”라며 “무엇보다 소극장이라는 공간 특성 상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감정적)스킨십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데이비 역의 안지환은 “이 작품의 주제가 무거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멀게 느껴질 수 잇는 작품이지만 제 연기를 통해 이 작품이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껴지도록 하고 싶다”라며 “데이비가 길거리를 지나가다 본 학생일 수도 있고, 내 동생이나 조카처럼 느껴질 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는 현실로써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가 데이비가 겪은 일들을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27일 개막한 ‘킬롤로지’는 오는 12월 1일까지 서울 대학로 TOM 2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