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니니’ 그 후…홍석기가 독주회 여는 이유 “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2024-11-07     김수현 기자
▲인터뷰 전 사진 촬영 중인 배우 겸 바이올리니스트 홍석기

바이올린을 든 지 어느덧 20여 년, 오랜 시간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 살아왔던 바이올리니스트 홍석기가 뮤지컬과 만남을 계기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베토벤’, ‘오페라의 유령’ 등 여러 뮤지컬에서 연주자로 활약했던 홍석기는 올해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주연 배우로 데뷔한 데 이어, 이제 자신만의 독주회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한 명의 연주자로 시작해 이제는 배우, 프로듀서로서의 면모까지 보여주고 있는 홍석기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늦은 시작, 하지만 운명 같은 만남

"현악기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예요. 바이올린은 제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섬세해야 이 악기를 잘 다룰 수 있죠."

홍석기가 바이올린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교회 반주를 시키려던 어머니의 의지로 6살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오랫동안 재미있게 치던 중에 갑자기 찾아온 인연이었다. "친구가 취미로 바이올린을 하고 있었는데, 신기해서 엄마한테 악기 하나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고 말한 홍석기는 '취미'로 시작한 바이올린에 흠뻑 빠져 결국 중학교에 올라가는 해, 바이올린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보통 연주자로 성장하려면 4, 5살 때부터 시작해야 커리어가 돼요. 기량을 펼치기에 가장 좋은 나이가 10대라고 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는 시작이 늦은 편이었죠." 남들보다 뒤처진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니 고민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늦은 시작도 그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바이올린을 잡았을 때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예쁘게 생긴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라며 ”어린 나이에 사랑을 모르는데도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순식간에 빠져버렸다"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바이올린에 빠진 홍석기는 대가들의 연주를 ‘덕질’하듯 찾아들으면서 그의 손에 들린 이 섬세한 악기에 더욱 더 매료됐다. 정경화, 야샤 하이페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같은 최고의 연주자들의 연주를 파고들어 듣고 또 들으면서 수없이 충격에 빠지고, 사랑에 빠졌다.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에 입학하면서 이성주 명예교수를 만나 그때부터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인터뷰 전 사진 촬영 중인 배우 겸 바이올리니스트 홍석기

클래식에서 뮤지컬로, 새로운 도전

홍석기의 음악 인생에서 큰 전환점은 뮤지컬 '파가니니'였다. 그전에도 '베토벤', '오페라의 유령', '어쩌면 해피엔딩', '4월은 너의 거짓말' 등 여러 뮤지컬에서 연주자로 참여했지만, '파가니니'는 달랐다. 액터 뮤지션이라는 형태로, 처음으로 뮤지컬의 ‘주연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도전을 결정하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처음에는 정말 망설였다. 계약서를 받아놓고도 한 달 반을 고민했다“라는 홍석기는 ”하지만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한 번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다“라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그렇게 단단히 각오했지만 도전은 쉽지 않았다. 홍석기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귀가 있으니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라며 ”음정도 못 맞추겠고, 귀로는 알겠는데 소리가 안 나오고,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뮤지컬 배우’로서 모든 게 처음인 상태다 보니, 새로 데뷔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모든 걸 만들어나가야 하는 과정 속에서 그를 든든히 지원해준 건 함께 공연한 동료들이었다. 홍석기는 “‘파가니니’에서 처음 만난 배우들이 모두 다 대단한 분들이었는데 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품어주신 것 같다”라며 “특히 (김)경수 형이 거의 아빠처럼 품어주셨다. 맛있는 거 사주시고 막공 전 3주 간 공백이 생겼을 때, 저 혼자 1, 2시에 극장에 가서 비어있는 시간에 계속 연습을 했는데 픽업도 와주셨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습하면서 ‘나를 깨는 작업’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해낸 날, 경수 형이 와서 안아주고 가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게 정말 감사하고 힘이 많이 됐다”라며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건 동료들의 돈독함에서 온 것”이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한 것도 ‘파가니니’가 남긴 흔적 중 하나다. 생전 불러본 적 없던 노래에 흥미를 느끼고, 보컬 트레이닝에 재미를 붙이는 그에게 다음 번에도 ‘파가니니’에 도전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다음 파가니니가 오면 더 준비된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인터뷰 전 사진 촬영 중인 배우 겸 바이올리니스트 홍석기

도전에 대한 자신감, ‘셀프 프로듀싱’ 독주회로 이어지다

‘파가니니’로 마주한 도전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저를 내려놓고, 제가 만들어놓은 완벽한 세상에 틈이 살짝 생긴 거예요. 거기로 유입된 공기가 생각보다 너무 숨 쉬는 느낌이 들었어요. 바이올린을 할 때 못 느껴봤던 자유로움이었죠."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홍석기는 독주회를 통해 관객과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파가니니가 끝나고 나서, 연주로 저를 본 분들에게 빨리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라며 ”제가 원래 이런 걸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고, 잘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독주회를 준비하게 됐다"라고 직접 독주회를 기획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독주회가 특별한 이유는 기획부터 모든 것을 홍석기가 직접 손댔다는 점이다. 그는 “그동안 누군가 만들어준 장소에 가서 연주만 했었는데 이렇게 모든 걸 기획하다보니 배우는 게 많다”라며 “더 다양한 도전을 해볼 수 있겠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서 만날 수 있도록 고민해가며 만들어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들려줄 곡은 요하네스 브람스의 스케르초 C단조 'F-A-E' 소나타, 아르보 패르트의 '형제들(Fratres)',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의 역사'다. 홍석기는 "브람스의 열정적인 낭만성에서 시작해서 패르트의 고유한 성찰을 거치고, 피아졸라의 열정적이고 다채로운 탱고로 마무리되는 여정을 준비했다“라며 ”제가 좋아하는 곡이자 저의 정체성을 보여드릴 수 있는 곡들로 구성했다“라고 덧붙였다.

"저를 계속 도전하게 만드는 게 바이올린이에요. 앞으로도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새로운 무대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관객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조금씩 늘려가면서요.”

이번 독주회에서 홍석기가 보여줄 무대가 기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도전’으로 정의한 바이올린과 그의 호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을 향해 나아갈 홍석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독주회는 오는 24일(일) 서울 강남구 갤러리 THE SPACE 청담에서 오후 2시와 5시 총 2회 개최되며 예매는 23일까지 독주회 포스터 내 QR 코드를 통해 가능하다. 

▲홍석기 바이올린 독주회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