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ON] '해적' 임찬민, “랑연’ 아니면 해적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찰랑이니까”①

2024-12-26     김수현 기자
▲ 배우 임찬민이 인터뷰 전에 사진을 찍고 있다. ㅣ 김수현 기자

별을 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지금 대학로에 가면 별을 쏘는 낭만 해적을 만날 수 있다. 캐스팅 공개와 함께 오랜만에 그녀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뮤지컬 <해적>이라는 공연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린 11월의 어느 날 혜화의 한 카페에서 배우 임찬민, 랑연을 만났다. 

※ 본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Q.안녕하세요. 두 분의 소개와, 캐입(캐릭터 이입)해서 해적 인사 부탁드려요.

임찬민 안녕하세요. 저는 뮤지컬 배우 임찬민이고요, 뮤지컬 해적에서 글 쓰는 소년 서술자 ‘루이스’ 그리고 멋진 여자 해적 총잡이 ‘앤’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야~이 해적들아! 제발 이 인터뷰 좀 잘 읽어줘라! 알겠니?”

랑연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 랑연입니다. “안녕~ 나는 캡틴 잭이야. 너희 나와 찬민이가 나온 기사 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리고 난 ‘메리’이기도 하지 옆의 여자는 마이 ‘앤’ 그냥 재밌게 읽어” 

Q. 2019년 공연 이후 오랜만에 만나셨는데 소감은 어떠신가요?

임찬민 올해 초에 찰랑 고구마라고 쓰여있는 마트 전단을 발견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랑연이를 태그하면서 콘서트에서 찍었던 페어 사진도 함께 올렸는데 약간 기운이 이상했어요. 뭔가 당연하지만, 곧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 실제로 만나니까 너무 벅차올랐어요. 계속 만나게 될 거라고 꿈꿔왔는데 사람은 정확하게 꿈꾸고 생각해야 하는구나 했어요.

랑연 공연에 대한 연락을 받았을 때 지난번 공연 때 (임)찬민이가 “바다가 돌고 돌아서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우리도 돌고 돌아 다시 올 것이다”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5년 정도 지났는데 여전히 설레고 반가웠어요. 평소에도 우리가 할 것 같다. 우리는 꼭 만날 거라고, 말한 것처럼 정확하게 이루어 진 거죠.

Q. 함께 공연을 하게 된 건 언제쯤 알게 되셨고, 그 이후에 이야기를 좀 나누셨나요?

임찬민 뮤지컬 <접변> 연습 중이었으니까 한 5월 말쯤이었던 것 같은데, (주)콘텐츠플래닝 노(재환) 대표님이 <해적>을 가져가시기 전에 찰랑 페어 공연을 많이 보셨거든요. 여자 페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고 개인적으로 <앤ANNE>이라는 작품을 할 때부터 노 대표님이 갖고 계신 동화 같은 작품을 픽업하는 능력을 좋아했어요. 연락을 받자마자 해적선에 태우려고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페어에 대해 이야기 하셨나요?) 저는 랑연이 아니면 해야 할 이유가 없었고요. 랑연을 빼놓고 찰랑을 이야기할 순 없죠. 대표님이 그런 부분을 너무 잘 알고 계시고 지칭을 너희라고 하시기 때문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랑연 카톡을 하긴 했는데, 각자 연락을 받은 다음이었어요. 노 대표님이 연락하셨고 전화를 받았더니 "너 요즘 찬민이랑 잘 지내고 있니?" 하고 물어보셔서 느낌이 왔죠. 그런데 <해적> 얘기는 하나도 안 하시고 "한번 보자" 하고 끊으셨어요(웃음). 전화가 울리고 찬민이 이름이 나온 순간 하게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임찬민 대표님이 수줍음이 많으신 편이라서 처음부터 본론을 꺼내지 않으시는 편이고 굉장히 세심한 분이시거든요. 방식이 좀 무뚝뚝하셔서 그렇지.

Q. 오랜만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은데 중점적으로 연기하려고 했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임찬민 이전에도 지금도 저희는 텍스트 중심의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처음에 공연을 준비할 때 이희준 작가님께서 대사 번형을 지양해 달라고 요청하셨기 때문에 그 부분을 중심적으로 연습을 해왔고요. 저희만이 가지고 있는 클래식한 부분을 마지막까지 잘 지켜서 공연하고 싶어요. 랑연이랑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따뜻한 밥같이 연기해 보자고 많이 얘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랑연 5년 전에 했던 작품이라고 해도, 저희가 첫 페이지를 열었던 작품이라 몸에 각인된 것들이 있거든요. 대본을 읽으면서 고수하려고 했던 것들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관성적으로 알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대본을 좀 더 꼼꼼히 봤어요.

찬민이가 말했던 것처럼 클래식함이 원작 고유의 미학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사와 대사 사이의 간극이 행간, 작가님이 만드신 매력적인 부분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다시 점검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작품을 만날 때마다 고민하는 부분이 있는데 노래 연기라고 하면 설명될 것 같아요. 피지컬적으로 여자 배우가 '잭'과 '메리'를 어떻게 구분 지어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남자 여자가 아닌 ‘칼리코 잭’으로서 어떻게 뮤지컬에 녹아들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부분에 대한 점검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익숙한 발성을 이용해서 노래와 연기를 할 것인지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생각한 잭에 맞는 소리를 사용할지. 결과적으로는 후자를 골라서 진행하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폭넓게 인물을 구축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이야기를 살짝 전달해 드리고 싶었어요.

Q. 첫 공연을 끝내고 어떤 말씀을 나누셨나요?

임찬민 역시 랑연 참 잘했다(웃음). 심리적인 압박감도 있었을 텐데, 잘 컨트롤하면서 파트너인 저를 끊임없이 보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고요. 그래서 역시 너다!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랑연 당연히 격려하고 독려했던 것 같은데(웃음). 사실 너무 무서웠는데 같이 있으니 역시 짝꿍은 짝꿍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해적>이 너무 좋은데 무서운 작품이에요. 잘하고 싶고 잘 해내야 하고 첫 공을 잘 마무리 지었다고 스스로에게도 칭찬해 줬어요. 그리고 이 기회를 빌려서 좌석을 꽉꽉 채워주셨던 관객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어요. 첫 공연이 수요일 낮 공연이어서 객석이 차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서웠는데 그 광경을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임찬민 무대에서는 둘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배에 같이 타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우리를 위해서 와줬다는 생각에 힘을 많이 받았어요. 마티네가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공연으로 잘 보답하고 싶었어요.

랑연 팬분들의 의지가 느껴졌어요. 수요일 마티네(웃음).

▲ 배우 임찬민, 랑연이 인터뷰 전에 사진을 찍고 있다. ㅣ 김수현 기자

Q. 오랜만에 연습실 분위기는 어땠나요? 

임찬민  학구적인 연습실이었다고 생각해요. 연출님이 바뀌신 부분도 있고 새로운 지점들도 있었고요. 안 풀리는 구간이 생기면 퇴근하다가도 (최)호승 오빠랑 한참 서서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임)예진이 에게도 너는 이거 어떻게 연기해? 하면서 묻기도 했어요. 

호승이 오빠가 정말 분위기 메이커예요. 정확히 빨리 배우는데 스페이스를 참 잘 지켜요. 제가 약속 맨 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는데 뭔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약속~맨! 이렇게 불렀어요(웃음). 이 나이에도 다 같이 어울려서 놀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은 호승이 오빠가 뭐하지? 하면서 기대하면서 출근했네요.

랑연 그가 연습실 오기를 기다렸지(웃음). 워낙 유쾌한 사람이에요. 두 명 빼고는 다 아는 얼굴들이었는데 남자 배우들이랑은 다 알더라고요. (주)민진 오빠랑은 <그리스>를 같이 했었는데 14년 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호승이 오빠는 <6시 퇴근>에서 만났었죠. (박)규원 오빠는 <리틀잭>을 같이 했고  (김)지온이는 이번에도 같이 무대에는 못 서서 좀 아쉬웠고요. 배우들이 색깔이 다양하고 캐릭터 적으로 깊이 있게 고민하고 있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낯을 가리는데 잘 스며들 수 있었고 밀도 있는 연습 분위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Q. ‘뭘 봐 여자 해적 처음 봐’ 채팅방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시나요?

랑연 이거 찬민이가 만들었어요(웃음).

임찬민 별별 얘기 다 하는데 요즘에는 스테파(스테이지 파이터) 얘기도 많이 했어요.

랑연 제가 춤을 좋아해서 한국무용도 배우고 관심도 많았거든요, 대본 보다가 쉴 때 틀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다들 제발 봐달라고 사정해서 (정)우연이도 보고 서로 어디까지 봤는지 진도도 체크하고 그랬어요.

임찬민 밥 먹으러 하이디라오 갈까? 그런 얘기도 하고, 요즘 날씨가 건조하니까 마이크 테스트 할 때 좀 더 신경 써서 하자는 얘기도 했고요. 공과 사를 오가는 잡다한 토크가 이뤄지고 있어요. 사이 좋은 직장 동료의 방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랑연 그런데 찬민이가 그런 피드백을 참 잘해줘요.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목이 아플 수 있으니 한번 체크하고 들어가면 좋겠다 같은 얘기들이요. 이렇게 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이런 소통을 해주니 즐겁죠. 

Q. 2024년 <접변>을 비롯하여 <홍련> 등 여성 위주의 공연이 관객들에게 호응을 받았는데요. 여성 배우 페어의 매력을 말씀해 주신다면?

임찬민 제일 좋은 점은 무대를 같이 했던 짝꿍들의 눈만 봐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요.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으로도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앤'과 '메리'가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듯, 저희만 느낄 수 있는 연대감이나 유대감도 한몫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부분들을 객석에서 잘 느껴주고 계신 것 같아요. 무대에 있으면 그 모든 게 생생하게 와닿거든요.

질문지를 받아보고 기쁘면서도 슬프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슷한 질문을 몇 년 전에도 받았었는데 2024년에 또 대답하게 되네요. 올해 좋은 작품들이 짧은 찰나에 많이 올라왔었는데 당연하게 계속 더 많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랑연 <해적> 초연을 했을 때 고민이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롤이 있는 여자끼리 나오는 작품은 더 많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때보다 여자 배우의 수나 작품이 늘어나기는 했는데 더 다양한 작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작품의 색깔이 아니라 나이의 이야기인데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연기를 할 수도 있지만 배우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연해 낼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는 풀이 좀 풍성해졌으면 해요. 깊이 있는 연기를 위해서 다양성 있는 작품도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Q. '앤'과 '메리'는 여성을 감추고 남장을 하고, 바다로 뛰어들게 되는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었는데요.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임찬민 작가님이 재창작을 하셨지만, '앤'은 원래 실존 인물인 ‘앤 보니’에서 만들어 진 거로 알고 있어요. 그녀의 기질에 대해서 묘사된 걸 보면 성추행하려는 사람을 때려눕힐 정도로 보통 아닌 여성이었고, 어지간한 남성을 다 이길 만큼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앤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극적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원래 '앤 보니'가 가지고 있던 기질이나 에너지를 표현된 소스 안에서 최대한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연기하는 앤은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오빠들과 총싸움에서도 무조건 1등을 하고 남장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거든요, 내가 그동안 싸운 놈들보다 내가 더 대단해 라는 마음을 가지고 바다로 나간 것 같아요. 별의 흐름도 읽을 줄 알고 어떤 상황에 자신이 나서야 하는지도 아는 전략가여서 기회만 만난다면 무조건 고! 해버리는 어떤 운명이라도 나에게 온다면 난 그걸 기꺼이 해낼 거로 생각했을 것 같아요. 

랑연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잭' '메리' 모두 실존하는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왔어요. '메리'는 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상속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오빠의 옷을 입고 살게 되었다는 서사가 있더라고요. 모티브와 별개로 제가 그리는 메리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세상에 나를 던지기 위해서 배를 탄 거죠.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겠지만 남장하고 여성임을 감추는 상황엔 익숙했겠죠.

싸움으로 인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존재감을 보이는 메리에게 있어서 여성이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중요했던 순간이라면 앤을 만나서 죽었던 심장이 타오르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임찬민 오히려 술집 연기를 할 때는 여성을 이용하는 편이에요. 그 부분을 보여줘야 이후에 생길 변화가 명확하게 보이니까요. 그 외에는 우리가 여성임을 살려서 연기한다 감추면서 연기한다 이게 아니라 섬세함을 드러내느냐, 섬세함을 감춰야 하느냐의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랑연 사실 '앤' '메리'는 서사가 짧고, 전체로 보면 아주 잠깐 나오는 편이에요. 둘의 서사는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부각하는데 상대방을 사랑해서 나오는 감정들, 내가 살아있는 순간의 삶을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하죠. 남자 여자보다는 '메리'다운 그것을 보여주는것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