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ON] '해적' 랑연, “임찬민의 '앤' 태양 같고 강렬해서 믿고 의지할 수 있죠.” ②
Q. 사랑에는 이유가 없겠지만 ‘앤’과 ‘메리’ 어떤 부분에서 끌리게 되었을까요?
임찬민 말로 정리해 버리기에는 너무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바람과 싸우고 파도를 이겨가면서 서로 마주 보고 싸우는 그 순간이 너무 희열이었을 것이고 본능적인 이끌림이 있었을 거라고 봐요. 어떠하다 명명하긴 어렵고 말로 정의하는 순간에 매력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메리' 그냥 '앤'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끼리는 다 알고 있거든요. 찰나의 순간을 그런데 저희와 함께 객석에 앉아 계신 분들도 똑같이 그걸 알고 계실 거라고 믿어요.
랑연 마찬가지로 참 정리하기 어렵다,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영원히 맞닿는 느낌? 영혼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삶의 로맨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찬민 다만 성애적인 부분은 아닐 수도 있어요.
랑연 살면서 이런 로맨스가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인데, 그게 우리가 하는 거거든요. 너무 부러워요 ‘앤’과 ‘메리’가 성애적이라고 말하기보다 그냥 영혼이 맞닿고 그냥 알아버리는 거죠. 서로 눈만 봐도 알 것 같은 그 순간들.
제가 질문을 받고 찬민이랑 예진이 얘기도 써왔거든요(웃음). 찬민의 '앤'은 태양같이 강렬해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고 예진의 ‘앤’은 내면의 강인함이 있어서 포근하게 감싸주는 힘이 있어요.
임찬민 어우 나 눈물 나올 것 같아, 너무 잘 알아줘서. 5년 전에도 항상 얘기했지만, 저의 ‘앤’과 ‘루이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는 태양이거든요. 작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시는 분들에게 뜨거움이 느껴져야 하고 ‘루이스’는 잔잔한 파도 같아 보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바다를 멀리서 보면 잔잔하지만 바다 안에서는 수많은 풍랑이나 파도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루이스’는 푸른빛 바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Q. 정말로 별을 쐈다고 생각하시나요?
임찬민 예전부터 말해왔는데 ‘앤’은 전략가로 별을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북극성의 길을 알고 있었어요.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면 증명해 내야 하거든요. 저의 ‘앤’의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해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별을 쐈죠.
랑연 ‘잭’이 ‘앤’에게 바랄 수 없는 부분도 거기 포함된다고 생각하는데, ‘앤’은 정말 ‘잭’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너머의 것까지 보는 여자라 너무 매력적이에요.
Q. ‘루이스’는 어리고 주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캐릭터입니다. 임찬민 배우는 예쁜 따님과 함께하고 계시는데 변화된 주변 상황이 연기에 도움이 되셨을까요?
임찬민 집에 '루이스'가 있어요. 종이도 가끔 먹고요(웃음). <해적> 연습을 하는데 ‘케일럽’의 마음에 너무 이입되고 '루이스'가 스스로를 불쌍하게 느꼈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령선 씬에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더라고요. 그랬더니 연출님이 “찬민아, 그렇게 울지 않아도 돼, '루이스'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을 수도 있어. 너는 왜 슬프다고 생각할까?”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더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가수 신해철 님의 자녀분이 나오신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자녀분이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어려서 슬픔이 뭔지 몰랐다고 하시는데 그걸 보는 순간 내가 좀 더 살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럴 거야 하는 고정된 관점을 가졌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부분을 걷어내려고 집에 있는 아가 '루이스'를 관찰했는데 아주 직관적이고 인풋이 들어가는 대로 아웃풋이 나오더라고요(웃음). 처음 만나서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루이스'를 만나보자 했어요.
고민하는 과정에서 남편에게 내가 일 욕심이 많아서 우리 아기가 '루이스'처럼 엄마는 나보다 일을 사랑한다고 느끼면 어떻게 하지? 라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어요. 다행히 남편이 아가는 나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기 때문에 결국은 잘 클 거라고 말해주면서 '루이스'도 잘 컸잖아. 라고 말해줘서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고 그런 일들이 있으면서 저도 다각적으로 이 작품을 새로 접근하고 적립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Q. ‘잭’과 ‘하워드’ 늘 반기를 들고 정리하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요?
랑연 '잭'의 첫사랑은 '하워드'죠. '잭'은 왜 바다에 갔을까? 왜 바다에서 살수 밖에 없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일거리를 찾거나 선원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항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 첫사랑 아버지나 삼촌 같은 존재였을거예요.
'잭'이 선장이 되었을 때 '하워드'를 데려간 이유는 경험이 많은 해적이었고, 배에서 필요한 역할이 충분히 있었고 아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잭'은 인간적이고 마음이 유약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 '하워드'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속으로 의지도 하고 있었을 거라서 '잭'이 '하워드'를 버리고 가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워드도 잭이 그 소년이었던걸 알고 있었을까요?) 저는 안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하다 보면 배우들의 노선에 따라서 디테일이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현재로서는 하워드가 잭을 그 아이구나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은 분명히 있을 거로 생각해요. 하지만 딱히 말하지는 않았다 정도일 것 같아요.
Q. 함께 죽고 싶었지만 ‘메리’의 말에 한 번 더 살아 보겠다고 생각한 ‘앤’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임찬민 ‘메리’는 첫 만남부터 죽고 싶었던 사람이었지만, ‘앤’이 하는 검술이나 총술은 살기 위해서 했던 것들이었거든요. ‘메리’는 누군가 나보다 강해서 날 죽여줬으면 했는데 아무도 자기보다 강하지 않았죠. 그런데도 죽자 살자 달려드는 강하지 않은 '앤'을 보면서 나와 반대 지만 계속 보고 싶다고 감정을 느꼈을 거예요.
'메리'가 소리치면서 “가-!!!”라고 하는 순간 둘은 눈을 마주치고 '앤은' 눈빛으로 '메리'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죠.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생명력, 너는 원래 그런 아이야 소멸하지 않고 우리 불꽃 튀었던 순간처럼 너는 너답게 더 살아 가야해 라는 이야기를요. 같이 소멸하는 걸 목적으로 감옥에 들어왔지만 아, 내가 이 사람 몫까지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어 버려요. 그래서 살게가 아니라 살아볼게 라고 말하거든요. 너를 위해서 살아본다고.
랑연 사실 저희가 두 번째 회차까지는 등 돌리고 “가!!”라고 했는데, 다음 회차부터인가 마음이 움직여서 찬민이에게 말하지 않고 얼굴을 보고 대사를 했거든요. 그 순간에 내가 그녀를 그녀가 나를 보고 그 눈빛으로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는 순간이 강했어요. 그게 바로 저희가 그리는 ‘앤’과 ‘메리’ 같았고 이야기가 크게 느껴졌어요. 그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요.
임찬민 저는 말을 좀 뜯어서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살 게가 아니라 살아볼게 라고 말한 것은 내가 살아야 ‘메리’를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소멸하면 뒤는 없는 거니까. 헤어지는 장면은 그걸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메리’가 최후의 순간에 자유롭게 노래하면서 생과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이유도 살아볼게가 어떤 말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보면 또 다른 희망이죠. 기억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이요.
Q.‘앤’이 ‘잭’에게 용감하게 싸웠다면 해적답게 죽을 수 있었다고 말했을 때 ‘잭’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랑연 너무 당연하지만,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을 거예요. 앤, 메리한테 미안하지만 ‘루이스’를 혼자 두고 어떻게 가지 하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친구 ‘빅토리아’ 결국에는 ‘빅토리아’에게 ‘루이스’를 맡겨야 하는데 괴롭죠. 형용할 수 없는 마음들, 함께 해주지 못한다는 감정들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그런 심정이에요.
Q. ‘잭’에게 루이스란, 메리에게 앤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랑연 저도 계속 말해왔던 부분인데 ‘루이스’에게 진짜 아버지가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이번 항해에서 항해일지를 잘 쓰고 잘 기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고요. 공연 중에 짐을 옮기게 하거나 툭툭 던지는 이야기들은 ‘루이스’가 강하게 컸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육체적인 강함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렇게 되길 서투르지만, 원하고 있어요.
‘앤’은 저에게 마침표 같은 존재요.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던 ‘메리’의 삶에 닻을 내리게 해준 존재예요.
Q. 해적답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랑연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슬픈 사람도 기쁜 사람도 길을 못 찾는 사람도 모두가 해적이 될 수 있어요. <해적>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고요. 누구든 괜찮다. 그래서 저 자신이라고 명칭을 하게 됐네요.
임찬민 어렸을 때는 해적이 거칠고 극악무도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작품을 해석하면서 느꼈던 거는 우리 모두 다 약하고 그걸 인정하자는 거였어요. 안을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귀하고 예쁜 사람들이죠. 배신한 외다리조차도 '루이스'의 소설 속에서는 '잭'과 합쳐져서 재창작되는 것들을 보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너무 낭만적이에요. 해적이란 건 저에겐 낭만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Q. 10년이 넘는 연차가 되셨는데 배우님들의 생각하시는 목표가 있으실까요?
랑연 어휴 벌써 10년이 됐어.
임찬민 시간이 빨라요(웃음). 아주 좋은 텍스트의 연기들을 꾸준히 진행 하고 싶고요, 향후 10년 정도의 목표가 있다면 제가 스스로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능력치를 키워보고 싶어요.
랑연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공연을 하던 하지 않던 주어진 시간을 잘 운용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Q. 제일 좋아하는 넘버나 장면이 있다면 이유와 함께 말해주세요.
임찬민 넘버가 정말 다 좋아서 고르기가 어려운데 지금 기준으로 하면 전 ‘질투하라’가 제일 좋아요. 이 노래가 늘 뜨거운데 왜 이렇게 뜨거울까요? 저는 어떤 날은 이 넘버가 차가워지기를 소망하면서 부르고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뜨겁고 저를 뜨겁게 만들기 때문에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막공까지는 아주 뜨겁게 공연하게 될 것 같아요.
랑연 진짜 너무 다 좋은데(웃음). 그래서 한 번도 얘기해 보지 않았던 장면을 해보면 어떨까 해서 로즈아일랜드를 골랐어요. 제가 대본을 볼 때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거나 장면이 짧은 부분을 디테일하게 보는 편이거든요. 작가분들이 수정하면서도 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요.
로즈아일랜드가 배역적으로도 모두 성장하고 또 반대로 포인트가 꺾이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데 구체적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극의 깊이와 풍성함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케일럽’을 명확하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오려고 초연부터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야 ‘루이스’도 ‘잭’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직도 설득력 있고 구체적인 캐릭터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지만요.
Q. 뮤지컬 <해적>을 꼭 보러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임찬민 우리의 이야기라서 꼭 보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루이스'였고 '앤'이고, '잭'과 '메리'였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라면 보면서도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겨울 바다가 얼마나 낭만적이게요(웃음). 무조건 보러 와주시면 좋겠고 지나간 공연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실 때 날씨가 추우니 꼭 따뜻하게 하고 오시는 거 잊지 마세요!
랑연 저희가 나오니까 당연히 보셔야죠! 저 너무 거만했나요(웃음). 저희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깊은 이야기들 잘 선보이고 싶고 마스크 쓰시고 패딩 챙겨입으시고 조심해서 와주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