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리뷰] 인간, 그토록 입체적인 선과 악, ‘지킬앤하이드’

2025-01-03     박지현 객원기자
▲홍광호_실험의 시작 ㅣ 제공 오디컴퍼니(주)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2004년 한국 초연 이후 평균 객석 점유율 95%, 누적 관객 수 18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데에는 프랭크 와일드혼의 매력적인 음악과 공들여 제작한 아름다운 무대장치, 배우들의 열연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으나 극예술로서 그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면 ‘지킬앤하이드’가 이토록 롱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보물섬’의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원작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이중인격, 또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말할 때 일종의 관용어처럼 사용되곤 할 정도로 실제로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누구나 그 설정만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친숙한 소재는 그만큼 진부할 수 있기에 이것만으로는 역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인기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인간은 매분 매초 무언가를 선택하며 그 선택은 자신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체로 타인이나 사회와 관계되어 있다. 어쩌면 온전히 그 자신과만 관련된 선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지금 입고 있는 옷마저도 입고 갈 장소와 시간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선택 외에도 우리는 자주 선과 악 중에서 어느 쪽으로 치우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만원버스에서 비어 있는 노약자석에 앉을 것인가? 만약 앉았다면 실제로 노약자가 탔을 때 일어날 것인가? 이는 다른 시민에 대한 배려, 혹은 도덕적 차원의 문제이나 선과 악이라는 흑백 논리로서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만 행위를 판단해야 한다면 말이다.

▲ 전체 살인, 살인 ㅣ 제공. 오디컴퍼니(주)

그렇다면 여기에서 다시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지킬은 선과 악을 분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질 수 있을까? 타인의 무례함을 익숙하게 참아 넘기는 지킬과 달리 하이드는 쉽게 분노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지킬의 기준에서라면 분노는 악에 속하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 인간은 분노를 통해 악과 맞서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또한 설령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인간의 감정을 구분한다손 치더라도 인간은 지극히 입체적인 존재이기에 우리는 누구에게나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며 따라서 그저 선하게만 보였던 자가 어느 순간에는 그렇지 않았음을, 악인이라 불리는 자에게도 때로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토록 입체적인 것이 인간이다.

지킬 박사의 실험은 애초에 선과 악을 나눌 수 있다는 가설부터가 잘못되었기에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의도는 선한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관객은 보았다. 또한 지킬이 자기 안의 악함과 그 악행이 주는 쾌락을 억누르고 이겨내려 분투하는 모습과, 끝내 그싸움에서 패배했음에도 결국에는 선함이 악함을 이기는 모습을 본다. 언제나 악은 강하고 선은 약한 듯 보이며, 또한 악은 유혹적이고 쉬우나 선은 영 내키지 않는 힘든 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수많은 선과 악을 행하나 많은 이가 인간의 기저에는 선함이 있다고 믿으며 종종 그것이 우리를 이끈다. 그것이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여전히 관객들에게 선택받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