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리뷰] 엇갈린 듯 엇갈리지 않은 찬란한 운명, 연극 ‘스타크로스드’

2025-01-21     박지현 객원기자
사진제공 = 달 컴퍼니

고통을 감추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쾌활함으로 애써 그 고통을 숨겨보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것에 몰두하여 그 고통을 잊어보려 하는, 스스로에게조차 그 고통을 마치 없는 것처럼 숨기는 사람도 있다. 무도화를 신은 남자, 웃는 얼굴의 머큐쇼는 악기를 들고 흥겹게 노래 부르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칼을 든 남자, 딱딱하게 굳은 인상의 티볼트는 캐퓰렛 가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싸움을 벌이곤 한다. 얼핏 정반대로 보이는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이 연극 ‘스타크로스드’를 통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사진제공 = 달 컴퍼니

연극 ‘스타크로스드’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곡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핀오프로서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쇼와 캐퓰렛 가문의 티볼트를 주인공으로 하여 진행된다. 머큐쇼는 몬테규와 캐퓰렛 양쪽 원수 집안의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으나 두 가문의 사이에서 굳이 거리감을 따지자면 몬테규 가문에 가깝고, 티볼트는 캐퓰렛 부인의 조카이며 그를 받아들여 준 캐퓰렛 가문을 충심으로 지키는 인물이다. 둘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를 만난 무도회의 밤에 우연히 만나 엉겁결에 가까워지고, 이후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신한 두 사람의 삶은 원작의 주인공들처럼 단 며칠 사이에 급격히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또한 연극 ‘스타크로스드’는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인 동시에 이 두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기 위해 뒤집어쓴 지나치게 두꺼운 외피를 한 겹씩 벗어내고 마침내 본래의 자신으로서 서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 달 컴퍼니

둘은 서로 정반대 쪽에 서 있던 인물들이다. 머큐쇼는 오늘만을 말하며 매사 가볍게 구나 티볼트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며 모든 일의 무게를 무겁게 여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서로를 조금씩 드러내면서 보이는 안쪽의 속내는 겉으로 둘러치고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티볼트는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고 약한, 손톱 없는 고양이 왕이기에 오히려 더 거칠게 굴며 언제든 칼을 빼 들었고, 아버지를 누구보다 증오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원했기에 부친의 존재를 이상적으로 대리하는 신과 캐퓰렛 경에게 자신을 의탁하며 살아왔다. 반면 어린 머큐쇼는 주정뱅이 양친 슬하에서 방치되어 자라며 지금이 아닌 내일을 원하고 기다렸지만 내일이 허락되지 않는 삶에서 오늘만을 중시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양친의 역할이 부재한 상황에서 오로지 그가 믿고 의지할 것은 현재의 자기 자신뿐이었고, 그렇기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자신은 의지할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제공 = 달 컴퍼니

그러나 둘은 소나기처럼 불쑥 찾아온 사랑에 흠뻑 젖어 현재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그만두고 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티볼트는 과거를 용서하며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고 본인조차 실체를 몰라 허상에 가까웠던 미래에 형체를 입혔고, 그 길을 인도하며 카펫을 깔고 꽃을 뿌려준 것은 머큐쇼이다. 과거를 외면하고 오늘을 부표(浮漂)처럼 떠돌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던 머큐쇼 역시 티볼트를 통해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관객은 슬프게도 운명에 의해 빗겨나갈 두 개의 별이 향하는 곳을 이미 알고 있다. 웃음에 노래를 곁들여 경쾌하고 즐겁게 흘러가던 연극의 흐름은 그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한층 슬픔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이렇게 엇갈린 듯한 사랑은 빗겨나가는 찰나일지언정 서로에게 닿았기에 둘은 그 순간을 통해 이전의 자신과는 영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이러한 만남은 분명 찬란한 운명이기에 사랑은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