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큐브 서울 '알렉스 카버' 개인전 승화(昇華) 개막
화이트큐브 서울 '인사이드 더 화이트 큐브' 프로그램
청담 화이트큐브 서울에서는 현대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전시 이력이 없는 비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인사이드 더 화이트 큐브'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툰지 아데니-존스의 한국 첫 개인전 '무아경(lmmersions)'을 시작으로 모나 하툼의 개인전 'Change language', 미국작가 알렉스 카버(Alex Carver)의 아시아 첫 개인전 승화(昇華)가 4월 25일부터 6월 14일까지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열린다.
작가는 풍경이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쉽게 읽힐 법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인간이 겪는 고통과 억압의 본질을 신체 승화시키는 독창적인 어법으로 구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단테의 14세기 걸작 <신곡> 첫 번째 부분 '지옥'의 서두에서 영감을 받아 사회적, 정치적 불안과 형이상학적 고통을 회화로 풀어낸 신작 10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승화(Effigy)는 정치적 인물을 형상화한 모형으로 작가의 회화 안에서 Effigy는 이를 불태움으로써 전이된 폭력성을 표출하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첫 번째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면 강렬한 세 편의 작품 '지옥 또는 불' 연작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불길에 휩싸인 사람들이 아홉 개의 원을 통과하기 위해 일렬로 힘겹게 걷고 있다.세 작품 위를 일렬로 행진하는 인체는 연소하며 주위 풍경 속으로 휘발된다. 마치 불나방을 보는 듯한 경험이었는데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각종 사회적, 정치적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작가의 의도는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게 한다.
종교화를 연상시키는 표제작 '승화'의 세 인물은 활활 타오르는 붉고 노란 불길 속에 층지어 뉘어 있다. 수술실 구조를 바탕으로 뒤엉킨 사지와 유령처럼 흐릿한 인물들을 부드러운 필치로 표현하고 거대한 짐승이 이 아비규환을 집어삼키는 광경은 주위 풍경 속으로 휘발된다. 화상 환자의 피부를 연장하는 식피 확장기를 회화 구성요소로 사용한 점은 놀랍고 특별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렉스 카버의 작업 과정은 미알못에게도 매우 흥미롭다. 나무틀에 고정하지 않은 린넨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후 기계적 스텐실, 수작업 레이어링, 프로타주, 의료 도면의 차용 등 다양한 회화 기법이 적용해 복합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그의 작품을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봐주기를 원한다. 마치 '회화는 감각의 피부'라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불길에 휩싸인 인체와 의료기 도면, 프로타주 기법 등 작가는 단순히 인간을 형상화하는 묘사를 넘어 인간 내면을 밀도 있게 탐색하고 시각화한다.
두 번째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풍경 또는 공기 연작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지운 것이 눈에 띄는데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상 치료에 사용되는 피부 이식 기계인 '스킨 그래프트 메셔' 도면을 활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풍경 연작에서는 화상 환자의 수술실 무균 순환 시스템 도면 위에 프로타주 기법을 적용, 유영하는 공기와 바람을 시각화해 통제와 긴장감을 유발한다. 시스템 안에서 무력화되는 인간의 모습은 AI 획일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의문과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두 연작을 통해 알렉스 카버는 회화라는 유연하고 은유적인 피부 위에 형상을 재현하거나 미학 장르적 기회를 이식하는 작업을 한계를 파헤친다.
인사이드 더 화이트 큐브 '알렉스 카버' 한국 첫 개인전은 6월 14일까지 전시된다. 4월의 봄, 미술적 사유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본 전시 관람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