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절망의 부두에서 울려 퍼진 생명의 아리아, 시네마틱 오페라 ‘메러디스’

1만 4000명의 피난민을 태운 기적의 항해를 무대 위에 담아내다

2025-06-07     김정민 기자
출처 (주)오픈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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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창작 오페라 ‘메러디스’는 단순한 전쟁 서사를 넘어, 인류애의 정수를 오페라라는 형식 안에 깊이 있게 녹여냈다.

이 작품은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중심에 있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실제 항해를 바탕으로 한 시네마틱 오페라다.

1950년 겨울, 함경남도 흥남에는 자유를 찾아 몰려든 수많은 피란민과 철수 중인 유엔군으로 가득했고, 이들을 이동시킬 선박은 턱없이 부족했다. 배를 타지 못하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는 군수물자를 과감히 버리고 60명 정원의 배에 피란민을 태우기 시작한다.

단 16시간 만에 1만 4000명의 피난민이 승선했고, 메러디스호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사흘간의 항해 끝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거제도에 도착했다. 항해 중 선내에서 다섯 명의 아기가 태어나며, 그 숫자는 1만 4005명으로 기록됐다.

‘메러디스’는 이 역사적 순간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네마틱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로 풀어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정교한 합창이 교차하는 가운데, 무대 위 실시간 영상과 밀도 높은 공간 연출이 당시의 긴박하고 숭고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무대는 단순한 비극의 복원에 머물지 않는다. 치매를 앓는 노모와 함께한 여정을 비롯해, 피란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중첩되며 삶의 밀도를 더했다. 특히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다섯 아기의 울음소리는, 절망의 부두에서 시작된 이 항해가 얼마나 희망적인 여정이었는지를 강렬하게 상징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의 귀에 익숙한 ‘굳세어라 금순아’가 서곡처럼 등장하고, ‘어메이징 그레이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 잘 알려진 찬송가가 편곡되어 흐른다. 형식은 오페라이지만,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쉽게 몰입할 수 있어 온 가족이 함께 역사와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적절하다.

레너드 라루 선장 역은 배우 하도권, 외신기자 윤봉식 역은 배우 박호산이 맡아 각각 오페라 무대에 첫 도전장을 내밀었다. 윤봉식의 아내 최덕자 역에는 소프라노 정아영과 이상은이,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항해사 로버트 러니 역에는 테너 김은국과 원유대가 나서 감동과 전율의 아리아를 선사한다.

여기에 피란민 강금순 역은 소프라노 김민지가, 치매를 앓는 윤봉식의 노모 역은 배우 박무영이 맡아 드라마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채워 넣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라루 선장, 그리고 1만 4000명의 피란민이 함께 만들어낸 용기와 기적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아픔과 생명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시네마틱 오페라 ‘메러디스’는 6월 6일부터 8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