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뷰] 음악극 '노베첸토', 바다 위에서 피어난 세계에 대하여
솔직히 말하자면, 배우 주민진의 인터뷰([혜전문] 20호_어느 날, '툭'하고) 전에 리뷰를 먼저 썼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을 통해 처음 느낀 감상이 인터뷰 이후에는 조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의 말을 통해 작품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지만, 무대 위에서 처음 마주한 인상의 순도가 흐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평생 바다 위에서 살아온 노베첸토의 항해에 함께 뛰어든 일은 몹시 벅차고 소중했다.
이 공연은 1인극이지만 무대에는 피아니스트가 함께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연주를 통해 친구가 되었다가, 라이벌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엔 노베첸토로 변모하며 관객 앞에 선다. 음악과 연기, 조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하나의 인물이 여러 존재로 분화되고 다시 하나로 모여든다. 연주에 맞춰 찰랑이는 철제 커튼은 감각을 자극하며, 무대 위 음악의 존재감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모든 이야기는 트럼펫 연주자 팀 투니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1900년 1월 1일,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선 ‘버지니아 호’에서 한 아이가 발견된다. 승무원 대니는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이름, 아이가 담긴 바구니, 그리고 발견된 년도를 따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라는 이름을 붙인다.
팀 투니는 노베첸토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화자로서 관객을 배에서 내리지 않도록 이끌면서도, 종종 장난스러운 제안으로 몰래 배에 태우기도 한다. 덕분에 객석은 어느새 같은 배에 탄 사람처럼 느껴지며, 배우의 연기가 만들어낸 세계 안으로 자연스레 끌려 들어간다.
무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노베첸토가 피아노의 고정 장치를 풀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팀 투니와 춤을 추는 순간이다.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노베첸토의 기질과, 배움 없이도 음악과 하나가 되었던 본질이 아름답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파도에 흔들리던 피아노와 홀은 부서지지만, 그 속에서 두 인물의 우정은 조용히 시작된다.
팀 투니는 조심스레 묻는다. “정말 단 한 번도 배에서 내린 적 없느냐”고. 노베첸토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그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무언가에 막혀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는다. 한참이 흐른 어느 날, 땅에 발을 디뎌보려 했던 그가 다시 배로 돌아오자, 팀 투니는 이유를 묻지 않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다.
세월이 흘러 팀 투니는 하선하고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노베첸토를 떠올릴 즈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버지니아 호가 곧 폐선된다는 내용과 함께, 배에 남은 노베첸토가 다이너마이트와 함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팀 투니는 곧장 배로 향하고, 오랜만에 재회한 노베첸토와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눈다.
노베첸토는 자신이 배에서 내리지 않았던 이유를 들려준다. “세상은 내가 연주할 수 없는 음악 같았어.” 너무도 거대한 세계는 끝이 없고, 끝이 없다는 것은 연주를 시작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욕망에서 자신을 분리했고, 그러면서 지켜낸 삶을 택한 것이다. “내 욕망들에게서 내 인생을 떼어냈지.” 노베첸토는 그렇게 선택한 세계와 함께 마지막을 맞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품고 산다. 어떤 이는 타인과 그것을 나누며 살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세계를 부수기도 한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 세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까.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라는 이름에 담긴 이야기는, 처음부터 바다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유하게 만드는 공연은 늘 소중하다. 관람을 마치고도 생각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지난 8일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이 여운은 관객들의 마음 어딘가에 ‘툭’ 하고 살아남아,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