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리뷰] 유령은 마침내 존재가 되리라, 뮤지컬 ‘팬텀’

2025-07-02     박지현 객원기자
제공 EMK 뮤지컬 컴퍼니

2015년 한국 초연 이후 오페레타 스타일의 서정적인 선율과 화려한 볼거리, 고전적 서사의 새로운 해석으로 감동을 전하며 관객의 사랑을 받아 온 뮤지컬 ‘팬텀’이 10주년을 맞이했다. 뮤지컬 ‘팬텀’이 갖는 매력을 꼽자면 첫 번째로는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순간들일 것이다. ‘팬텀’은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 씬이 보여주는 화려함뿐만 아니라 천장에서 떨어지는 샹들리에나 공연장 천장에 가까운 무대 3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팬텀, 지하 수로를 따라 무대 위를 유영하듯 미끄러져 나가는 배와 벨라도바의 발레 공연 등으로 잠시도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뮤지컬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추악한 존재로서 자신에게는 과분한 사람을 탐내어 마침내 모든 걸 잃고 죽게 되는 원작의 팬텀에게 ‘에릭’이라는 이름을 되찾아주었다는 점이다.

제공 EMK 뮤지컬 컴퍼니

우리가 어떤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례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을 떠올려보자. 모르는 이가 거의 없는 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호명 전의 존재는 무수한 ‘어떤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따라서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수없이 많은 물건 중 하나라 할지라도 내가 그것에 이름을 붙였을 때 그것은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서 식별되어 특정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갖고 있던 인형에 이름을 붙여주었던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려보라. 더 이상 흔해 빠진 기성품이 아닌, 머리가 굵어진 후에도 버릴 수 없었던 그 애틋한 존재를.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름을 붙인다. 그것은 그에게 부여되는 새로운 역할을 의미하는 호칭이기도 하고, 또는 그들끼리만 은밀하게 사용하는 별명이기도 하다.

팬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저 유령으로 존재하던 그는 뮤지컬 ‘팬텀’에서 ‘에릭’이 되었다. 그리고 이름을 얻은 그는 유령으로 부유할 뿐 아무도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는 대상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는다. 에릭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그 생을 다하는지 지켜보며 관객은 그를 하나의 살아있는 주체로서 인식하게 된다. 오직 살아있는 자만이 사랑을 한다. 또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 사랑에 빠진 에릭이 어떻게 그의 사랑을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또 어떻게 질투하고 그 사랑에 자신을 내던지는지, 그러니까 그가 어떻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흘러가던 자신의 인생을 비로소 살아내는지에 대해 알게 된 후에는 주요 서사를 위해 소모되는 한 캐릭터로서의 팬텀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에릭’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을 읽으며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 유령이 실제로는 주인공에게 역경과 고난을 주고 그것을 해결하게 하는 도구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한다고 느껴진 적이 있다면, 그 유령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혹은 그에 대한 서사가 어쩐지 부족하다고 여겨진 적이 있다면 한 번쯤 에릭을 만나러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엔 살아서 숨 쉬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