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드] 허영손이 말하는 '허영손의 라우디' 이야기 ②

2025-07-15     김희선 객원기자

 

※연극 ‘킬 미 나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연극열전 제공

“저의 라우디는 공간을 장악하려는 욕구가 있는 아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자신이 속하고 싶은 공간이 하나라도 있길 바란 친구였는데, 줄곧 그게 없던 삶을 살아왔던 거죠. 그래서 아마 누군가한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만큼 접근하는, 그런 라우디예요.”

라우디 역을 제안 받고 대본을 읽어 내려가던 허영손은 대사 한 구절에서 덜컥 멈췄다. “나는 날 때부터 나를 돌봐야 했어요. 나는 늘 안 괜찮았어요. 그래도 좋으면 좋다고 말해요.” 라우디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이 한 줄의 대사가 허영손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래서일까, 허영손의 라우디는 솔직하고 거침없다. “이 공연 덕분에 많은 것들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데, 부끄럽지만 지금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접근하고 조심스럽게 구는 걸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고 털어놓는 허영손처럼.

다루는 소재부터 묵직한 이야기의 결말까지, 모든 면에서 어려운 공연인 ‘킬 미 나우’에 다가가는 허영손의 마음도 꼭 라우디 같다.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라우디의 성격이 그와 꼭 닮았듯이 말이다. 허영손은 “먼저 다가간다는 것 자체가 라우디의 몸부림이자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욕망에서 오는 행위”라며 “서툴지만 진심이 묻어나기 위해, 어떤 욕구를 가지고 이 사람에게 다가가야 할까. 그 거침없이 다가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건 혼자 고군분투해야 하는 작업이 아니라, ‘킬 미 나우’를 만들어가는 모두와 협업하며 옳고 그름과 호오를 확실히 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이기에 가능했던 방식이었다. 초연부터 지금까지 ‘킬 미 나우’를 지키고 있는 이석준을 비롯해 배수빈, 이진희 등 경력직들은 물론, 새로 함께 한 뉴 캐스트 선배들과 창작진까지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낸 인물들이 ‘킬 미 나우’의 무대 위에 살아 숨쉰다.

이 점에 대해 허영손은 “다인이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뭔가 막힐 때마다 훅훅 들어오는 어떤 고수의 조언들이 우리를 지름길로 인도해준다”며 “가령 내가 생각하는 라우디를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혼란을 느꼈을 때가 있다. 그때 (오경택) 연출님이 ‘보는 사람마다 다를 거야’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흡사 ‘네가 맞다’고 해주신 것 같아 혼란을 버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연극열전 제공

그래서 허영손의 라우디에게는 악수도 몸부림의 일종이다. 허영손은 “처음 매 공연마다 라우디만의 시그니처 악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지금 하는 것처럼 ”와!“하면서 했는데 이게 픽스가 됐다”며 “이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라우디만의 몸부림”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탄성을 내뱉을 때도 상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발생한다. 트와일라와 첫 만남에서는 상대에게 집중하느라 탄성의 크기가 크지 않지만 제이크와는 늘 하던 대로, 거의 ‘점프’까지 하면서 소리 지르듯 악수하는 모습에서 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도, 그의 라우디는 매 순간 자신이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우리에게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허영손이 말하는 영손 라우디의 전사

‘엄마는 초콜릿, 아빠는 풍선껌, 나는 아이스크림’. 이 말 기억해?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달달한 게 바로 그것들이었어. 그래서 아마 가족이라는 건 그만큼 달콤한 게 아닐까 싶었지. 난 가족이 없는 삶을 오래 살아왔거든. 계속 외로웠어. 그렇다고 내가 그런 티를 굳이 내진 않아. 많이 외롭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면서 살아왔지. 그러다 센터에서 내게 가장 많이 공감해줄 수 있는 친구인 조이를 만났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걸 조이를 통해 처음 느꼈고, 그렇게 가까워졌지.”

마지막으로, 허영손이 라우디에게

“나가자!” 처음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자, 널 가두지 마라, 그런 의미로 “나가자”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라우디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밥 다 먹었으면 나가자’, ‘나가서 놀자’ 같은 의미로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라우디에게 “나가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시설, 독방, 이런 데에서 나가서 어딘가 들판, 초원 같이 탁 트인 곳도 좋겠죠. 걔 눈에 막힌 곳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춤추는 강, 허영손 씀.
서문.

거창했던 순간들은
어차피 시간에 묻힐 찰나.
그 찰나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이름들.

어차피 찰나.
지난날을 무겁게 안고서
기꺼이 나아가는
사랑하는 이름들.

세상은 아름답다.
인생은 아름답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라서?
모르겠다.
그저 막연하게.
꿋꿋하게.

입 안에 꾸역꾸역 넣어보는 아이스크림.
머리가 징- 울릴 때 비워지는 머릿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