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드] 곽다인이 말하는 '곽다인의 라우디' 이야기 ③
※연극 ‘킬 미 나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생부터, 또 자라면서 받아온 상처가 있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명랑하고 ‘방정맞은’ 친구죠. 그렇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외롭고, 진심 어린 눈길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그런 친구예요.”
본체의 성격이 묻어나서일까, 곽다인의 라우디는 섬세하다. 아마 이건 그가 ‘킬 미 나우’ 대본을 처음 본 순간, 새벽에 홀로 글을 쓰고 있는 제이크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18장이 마음에 깊이 남았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곽다인은 “이렇게 방정맞고 붕방대는 친구의 가장 사려 깊은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자, 스터디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신뢰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곽다인이 보여주는 라우디는 극중 내내 사려 깊고 섬세하며 지극히 외롭다. 라우디의 틱 장애가 처음 드러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통증을 이기지 못해 예민해진 제이크가 라우디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지르는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은 제이크를 향하고 라우디는 소외된다.
“당연히 나를 챙겨줄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아요. 트와일라도, 조이도 제이크를 따라가고 시선도 거기 꽂혀있는 모습을 보면서 ‘단 한 번만, 눈길이라도 보내주면 좋을 텐데’ 생각하지만, 기대조차 하지 않고 저의 푹신한 소파로 가죠. 그리고 제가 기댈 수 있는 이 쿠션을 꽉 붙잡는 거예요. 그게 라우디의 최선인 거죠.”
이처럼 외로움마저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느라, 가지고 있는 불행의 크기에 비해 늘 더 강해져야만 했던 소년의 우울은 겉으로 터져 나오는 방정맞음 사이로 꾸준히 엿보인다. 이건 배우의 강점인 ‘섬세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뒤에 완성된 그의 라우디이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곽다인은 “섬세함이라는 강점이 있다는 걸 아는데, 이게 큰 줄기를 잡아나가는 데는 좀 독이 됐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특히 라우디라는 인물이 극 중에서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그의 강점인 섬세함이 오히려 약간의 방해가 됐다. 그가 “감각적으로 자신이 그린 이미지를 투영하고, 대본을 분석하거나 연습해나가며 나와 캐릭터가 어느 지점에서 만날 것인지 조율해가는” 방식으로 인물에게 다가가는데, 라우디는 그 중간에서 만나기 너무 힘든 캐릭터였다고 돌이킨 이유다. 덕분에 그는 “처음으로 어딘가의 중간 지점이 아닌 다른 데서 하나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했고, 그 줄기를 잡은 다음에 자신의 섬세함을 ‘좋은 양념’으로 덧입힐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곽다인의 라우디는 악수를 할 때마다 “띵동”을 외친다. 고민한 건 두 가지다. 라우디의 명랑함과 사랑스러움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하고, 그게 소리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 음성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발음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게 “띵동”이었다. 곽다인은 “라우디는 누가 열어주든 말든 간에 계속 사람들 마음을 두드리고, 벨을 눌러보는 아이”라며 “한 번도 집이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악수와 같은 행동이 이 친구의 보금자리를 찾는 대모험이자 여정이 아닐까. 언젠가 열어주는 그곳에서 ‘나의 가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곽다인이 말하는 다인 라우디의 전사
“난 부모님을 만난 적이 없어. 그냥 시설에서 쭉 지냈지. 시설에서도 태아알코올증후군으로 인한 조울이나 ADHD, 틱 증상 때문에 핍박의 눈초리를 좀 받긴 했는데, 그러면서 내가 살아가는 방식, 적응하는 방식을 찾았던 것 같아. 그런 종류의 밝음, 혹은 방정맞음으로 외로움이라거나 상처, 아니면 근원적인 어떤 고민들을 계속 가려왔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나를 속이고, 또 속아버린 거야. 내 외로움을 보는 방법도 까먹을 정도로.
그러다 조이라는 친구를 만났어. 센터를 통해서 종종 장애 가정들을 지원하러 나갔는데, 평소와 똑같이 피곤에 절어서 방문한 집에서 똑똑하고 유쾌하고 좀 또라이 같은 그 애를 만난 거야. 그 순간 생각했지, ‘우리,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는데?’ 서로의 머리와 발이 되어주는, 뭐랄까, 덤 앤 더머 같은? 그때부터 조이네 집을 자주 갈 수 있도록 센터에다가도 작업을 좀 했거든. 결과적으로 시설을 나와서 조이네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된 건 정말 큰 즐거움이고 기쁨이었어. 아저씨도 그렇고, 스터디 가족 안에서 ‘소속감’이라는 걸 느꼈거든. 그런데 아예 잊고 살았던 외로움이라는 게 조금씩 꺼내지면서 아프기도 한 것 같아. 왜, 소독약을 바르면 더 따가운 그런 것처럼 말이야.”
마지막으로, 곽다인이 라우디에게
말보다는 맛있는 걸 많이 사주고 싶어요. 안 먹어본 거든 먹고 싶다는 거든, 뭐든.
춤추는 강, 곽다인 씀.
서문.
솜사탕 구름 아래, 초콜릿 언덕 사이로 딸기 아이스크림 강이 흐른다.
이가 몽땅 썩어버릴 걸 알면서도, 한번쯤은 손에 쥐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