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멤피스, 로큰롤과 사랑이 만든 잊을 수 없는 순간

2025-08-10     김정민 기자
뮤지컬 멤피스_공연사진_이창섭(휴이) (제공 ㈜쇼노트)

어렸을 적, 우리 집 거실 한켠에는 묵직한 전축이 있었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그 위에 LP판을 올리셨다.
그중에서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목소리가 담긴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치 집안의 공기처럼 흐르곤 했다.
그 멜로디와 목소리는 어린 나에게 음악이란 무엇인지 알려준 첫 기억이었고,
뮤지컬 ‘멤피스’를 보는 순간, 그 시절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뮤지컬 멤피스_공연사진_손승연(펠리샤) (제공 ㈜쇼노트)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휴이는 흑인 음악을 백인 사회에 전한 라디오 DJ였지만,
내 마음을 붙잡은 건 그의 음악이 아니라, 펠리샤와의 사랑이었다.
그 시대의 미국 남부, 테네시 멤피스는 차별과 편견이 일상처럼 존재하던 곳이었다.
그 속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숨길 수 없었던 두 사람.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금기의 공기 속에서 피어난 사랑이, 오히려 더 뜨겁고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뮤지컬 멤피스_공연사진_이창섭(휴이) 외 (제공 ㈜쇼노트)

휴이가 처음 흑인 구역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펠리샤의 노래를 들었던 순간,
그는 그녀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결심한다.
여러 방송국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던 그는, 우연히 백인 전용 라디오 부스에 잠입해
로큰롤을 틀어버린다.
대형사고였지만, 청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날 이후, 휴이의 인생은 전혀 다른 궤도를 달리게 된다.
그리고 펠리샤 역시 더 큰 무대와 꿈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꿈과 사랑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법.
그들의 길은 음악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거칠었다.

뮤지컬 멤피스_공연사진 (제공 ㈜쇼노트)

이번 재연 무대에는 초연의 배우들이 다시 돌아왔다.
박강현, 고은성, 이창섭,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정택운까지,
네 명의 휴이는 저마다 다른 결을 가진 매력을 보여주었다.
펠리샤를 연기한 정선아, 유리아, 손승연은 노래 한 소절만으로도 가슴을 찌르듯 울렸다.
델레이, 글래디스, 미스터 시몬스, 바비, 게이터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시대의 공기와 음악의 열기를 무대 위에 그려냈다.

무대를 가득 채운 빅밴드의 라이브 연주는 공연의 심장이었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와 키보드, 트럼펫과 색소폰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단순히 배경음이 아니라, 장면마다 또 하나의 인물처럼 살아 움직였다.
그리고 1950년대 멤피스의 색감과 온도를 재현한 무대 디자인은,
마치 그 시절의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몰입을 선사했다.

뮤지컬 ‘멤피스’는 단순히 음악극이 아니다.
이건 사랑의 이야기이자, 편견과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무엇보다도 나를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 시간여행 같은 공연이었다.
공연장을 나서며, 아버지의 전축 속 그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
그 가사처럼, 나 역시 이 작품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뮤지컬 '멤피스'는 오는 9월 2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