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리뷰] 거침없이 오늘을 노래하는 청춘들의 뜨거운 외침, 뮤지컬 ‘렌트’
서울 코엑스 아티움서 내년 2월 22일까지
“No day, but today!”
뮤지컬 ‘렌트’의 주인공들이 무대 위에서 반복해 외치는 이 한 문장은, 이미 지나간 어제와 불안한 내일을 잠시 뒤로 밀어두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려는 청춘들의 강렬한 선언처럼 들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화려한 조명도 이들의 자유와 사랑을 향한 외침만큼 환하지 못했다.
뉴욕 이스트빌리지 한편, 예술을 꿈꾸지만 가난·질병·중독의 그늘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이 있다. 현실은 삐걱거리고 내일은 보이지 않지만, 결핍으로 가득한 오늘이 오히려 더 뜨겁게 타오른다. 불완전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삶을 향한 집념, 그 뜨거운 에너지가 ‘렌트’의 무대 위에서 폭발한다.
■ 누더기조차도 예술이 되는 삶
작품 속 청춘들은 집세 독촉에 시달리고, 거리로 내몰리며, 편견의 시선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어차피 인생 자체가 다 빌려 쓰는 것”이라며 당당하게 맞선다. 어이없고 발칙한 반항이지만, 그 솔직함은 관객의 마음을 기묘하게 흔든다.
가난과 결핍이 뒤섞여 기워진 삶의 누더기조차도, 공장에서 찍어낸 반듯한 옷보다 훨씬 더 특별해 보이는 순간이다.
■ 우리 사회는 얼마나 따뜻했는가
렌트 속 배경은 차갑기 이를 데 없다. 집 없이 떠도는 청춘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이는 거의 없다. ‘조금만 더 서로를 이해했다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관객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동성애, 에이즈, 마약처럼 외면되던 문제들이 무대 위에 정면으로 등장하며, 작품은 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되묻는다.
‘이들을 따스한 무지갯빛 세상으로 데려가는 일은 누구의 몫인가.’ 작품은 책임의 방향을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관객에게 돌려놓는다.
■ 사랑으로 잰 52만 5,600분
‘렌트’를 대표하는 넘버 ‘Seasons of Love’는 한 해 52만 5,600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묻는다. 답은 단순하다. 사랑.
가난과 병마에 흔들리던 청춘들이 서로를 붙잡고, 웃고, 울고, 살아냈던 시간들이 가장 값지고 단단한 순간이었음을 작품은 노래한다. 힘겨운 날씨와 일상에 지쳐가는 오늘, ‘렌트’의 메시지가 더욱 깊게 울린다.
■ 오페라에서 길어 올린 현대의 보헤미안들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La Bohême)’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의 극작가이자 작곡가인 조나단 라슨이 자신의 경험과 주변의 삶을 녹여냈으며, 주류가 외면하던 소재들을 과감하게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R&B, 탱고, 가스펠, 록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오페레타 형식으로 엮어 독창적인 무대를 완성했고, 그 결과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동시에 거머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서사, 다채로운 인물의 향연
작품은 다양한 인물의 삶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며, 장면마다 에너지가 폭발한다. 각기 다른 배경과 성향을 지닌 이들이 꿈과 사랑을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무수한 감정의 파동은 관객의 집중을 강하게 잡아끈다.
다만 하나의 시점에서 여러 상황이 동시에 진행되고, 같은 멜로디에 서로 다른 가사를 덧입히는 방식이 많아 서사를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성스루(Sung-through) 형식 특유의 ‘대사 실종’도 일부 장면에서는 몰입을 방해한다.
■ 그럼에도, 이 작품은 왜 여전히 사랑받는가
‘렌트’의 넘버들은 로큰롤의 질주감과 블루스의 서정성이 공존한다. 각 인물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음악은 작품의 다채로운 인물군을 더욱 생생하게 그린다. 사회적 금기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기성 질서를 비웃는 유머는 작품이 가진 날카로운 매력 중 하나다.
무엇보다 ‘완벽하지 않아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는 메시지가 세대를 넘어 공감을 이끄는 힘을 보여준다.
이번 시즌에는 또한 독보적인 캐릭터 해석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정다희, 조권, 김수연, 구준모가 다시 돌아왔으며 여기에 더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이해준, 유현석, 유태양, 솔지, 진태화, 양희준, 황건하, 황순종, 김려원, 이아름솔 등이 새롭게 합류해 25명의 배우가 함께 한다.
지난 9일 개막한 '렌트'는 오는 2026년 2월 22일까지 코엑스아티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오늘이라는 선물 하나만을 손에 쥔 채, 사랑하고 노래하고 살아가는 청춘들.
뮤지컬 ‘렌트’는 그 뜨거운 하루를 관객에게 건네며 이렇게 속삭인다.
“내일이 두려우면 어때. 우리는 지금 살아 있잖아. No day, but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