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리뷰] 뮤지컬 '데스노트' — 신(神)이 되려 한 인간, 무대가 심판하다
죄인의 이름을 적으면 그가 죽는다. 단순한 전제 하나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가 145분짜리 무대 위에서 얼마나 날카로워질 수 있는지를, 디큐브 링크아트센터는 공연마다 다시 증명해 보이고 있다.
무대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는 척한다. 바닥과 천장, 정면 세 방향을 가득 채운 LED 영상이 공간을 만들고, 지우고, 다시 그려낸다. 어둠 속에서 하얀 선 하나가 공간을 가르는 순간, 극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구조물 없이 오직 빛과 선(線)으로만 쌓아올린 이 무대는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품는다. 라이토의 방, 수사기관 내부, 사신의 세계까지 — 전환은 매끄럽고, 그 매끄러움이 몰입을 끊지 않는다.
라이토 역을 맡은 고은성은 '정의를 확신하는 인간'의 위험함을 정밀하게 다뤘다. 과하지 않되 서늘했다. 타고난 단단한 성량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스스로를 '심판자'라 규정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쌓아 올리되, 대사의 미묘한 강약까지 절제된 호흡으로 통제했다. 데스노트를 처음 손에 쥐는 장면에서 그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섬뜩하다. 악인이 아니라 '옳다고 믿는 사람'의 얼굴로 이름을 적어 내려가는 라이토 — 고은성은 그 미묘한 온도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엘과 대치하는 장면에서는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심리적 우위를 점하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두 천재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맞은편에 선 김준수의 엘(L)은 이전 시즌보다 한층 정교해졌다. 시그니처 자세, 손가락을 두드리는 작은 습관까지 캐릭터의 결을 촘촘하게 채우면서도, 단순한 재현에 머물지 않았다. 김준수는 엘을 '천재'가 아닌 '고독한 자'로 읽어냈다. 대체불가한 독보적인 음색은 다음 수를 계산하는 예리한 판단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각인시켰다. 라이토와의 테니스 장면은 이번 공연에서 긴장감이 가장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LED 영상이 코트 바닥을 수직으로 세우며 공수가 뒤바뀌는 연출 속에서, 두 배우의 신경전은 무대 밖으로 튀어나올 듯 팽팽했다. 어느 한 쪽도 무너지지 않았다.
임정모가 연기한 사신 류크는 이 공연의 숨통이다. 올블랙에 검은 깃털, 기괴한 외형으로 등장하면서도 극의 가장 웃음이 터지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만악의 근원'이 객석을 가장 많이 웃게 한다는 반전이 작품 전체의 아이러니를 압축한다. 또 다른 사신 렘을 연기한 장은아는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남겼다. 미사가 착각에 빠질 때마다 현실을 자각시키는 장면에서 장은아의 렘은 단순한 감초 역할을 넘어, 이 작품 안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감정을 가진 존재로서의 무게를 묵직하게 짊어졌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사신 — 그 아이러니가 장은아의 절제된 연기를 통해 선명하게 전달됐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번안 가사가 리듬에 눌리면서 일부 넘버에서는 의미보다 박자가 먼저 도달하는 순간이 있었다. 앙상블이 밀집하는 장면에서 대사가 뭉개지는 부분도 간간이 있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인 만큼 이런 아쉬움이 더 도드라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자리를 뜨면서도 질문 하나가 따라온다. 라이토가 틀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법을 어겼기 때문인가, 아니면 신이 되려 했기 때문인가?
'데스노트'는 이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145분 동안 관객을 그 질문 속에 가둬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오는 5월 10일까지 신도림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기자는 4월 1일 오후 2시 공연을 관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