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속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김환희).”
“마음 안쪽에 있는 반짝거림을 꺼내주고 싶고, 살 만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김선영).”
무대 위, 그랜드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두 여인이 서있다. 구부정한 허리에 단정히 뒤로 넘겨 묶은 머리, 세월의 기색이 눈처럼 내려앉은 머리 아래 눈에는 말 못할 후회를 담고 있는 노년의 여성, 그의 이름은 크뤼거(김선경, 김선영 분)다. 또 다른 여인은 크뤼거보다 어리고, 사납고, 독기 찬 슬픔에 사로잡힌 눈으로 관객들을 바라본다. 그의 이름은 제니(김환희, 김수하 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시간, 뮤지컬 ‘포미니츠’는 그들의 여정을 무대로 끌어와 우리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 놓는다.
국립정동극장에서 5월 23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포미니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영화 ‘포미니츠(2006)’를 무대로 옮겨 온 창작 초연 작품이다. 원작인 영화 ‘포미니츠’는 2007 독일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 만큼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창작진의 고민도 컸다.
이수현 공연기획팀장은 14일 열린 ‘포미니츠’ 프레스콜에서 “영화가 원작인 작품으로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이 매우 쉽지 않았다. 매우 떨리는 마음으로 올린 작품이며, 변화하는 정동극장의 2021년도 라인업 중심에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영화를 뮤지컬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양준모 예술감독은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인물들이 갖고 있는 스토리. 실화 스토리, 그리고 마지막 4분이 아주 강렬했다. 과연 우리가 무대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인물들의 감정을 영화적 기법인 클로즈업 대신 노래로 표현하는 것부터 공연이 끝난 뒤의 감정선까지 모두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또한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인물들의 감정이 있고, 공연 끝나고 마지막까지 여운을 담아가실 수 있게끔 창작진들이 노력했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포미니츠’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60년 동안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온 크뤼거와, 천재적 재능을 가졌지만 살인죄로 복역 중인 18세 소녀 제니의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이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치유의 과정을 거쳐 희망으로 다가가는 이야기다. 크뤼거 역을 맡은 김선경, 김선영 두 베테랑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와 폭발하는 분노와 절망을 쏟아내는 제니 역의 김환희, 김수하의 에너지가 사각과 원형의 턴테이블로 구성된 무대를 가득 채운다.
뮤지컬 ‘메노포즈’ 이후 2년 만에 무대에 선 김선경은 “무엇을 하더라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내 삶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포미니츠’가 그렇다. 내겐 어마어마하게 크고 또 많은 희망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많이 배우고 있다”며 “많은 분들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나눴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김환희는 “포미니츠는 내게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공연을 하며 계속 와닿았고 제니에게 질문을 던지며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대 중심에 자리잡은 스타인웨이의 그랜드피아노는 백승범 편곡자의 말처럼 “‘포미니츠’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뤼거와 제니가 만나고, 교감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매개체이자 때로는 제니의 분신처럼 그와 연결돼 격정적이고 파격적인 연주를 쏟아낸다. 박재현 음악감독은 제니 역의 김환희, 김수하는 물론 한나 역의 박란주, 홍지희, 그리고 뮈체 역의 정상윤, 육현욱 모두 피아노 연주 장면을 위해 6개월 전부터 열심히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김수하는 “몇 개월 전부터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서니 불가능이란 없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진다”고 재치있게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직접 선보이는 연주 못지않게 주목할 부분은 제니의 격렬한 피아노 연주를 이끄는 조재철과 오은철,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선보이는 퍼포먼스다. 제니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는 마지막 4분 동안 그야말로 무대 위에서 폭발하는 케미스트리를 선보인다. ‘포미니츠’로 뮤지컬을 처음 경험한다는 오은철 피아니스트는 “일반적인 무대에서는 좋은 연주를 첫 번째 목표로 삼지만, ‘포미니츠’에서는 좋은 연주는 물론 제니와 호흡이 매우 중요한데 손가락 하나까지 맞추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마지막 4분을 위해 뜨겁게 달리겠다”고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