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니까요. 하지만 막상 연습 시작하니 너무 어려워서 제가 왜 하겠다고 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웃음).”
배우 송상은(31)이 5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왔다. 연극 ‘남자충동’ 이후 한동안 드라마, 영화 등 매체 활동에 집중했던 송상은이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오는 15일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개막을 앞둔 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엠피엔컴퍼니 제작)이다.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은 여성 1인 극 모노드라마로,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를 떠나보낸 십대 소녀 로리가 지리학 교사였지만 북극 탐험가가 꿈이었던 아빠를 대신해 그의 유골함을 가지고 홀로 북극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지난 2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서울자치신문과 만난 송상은은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1인극이 아니었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매체 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워 한동안 무대와 멀어졌지만, 이 공연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선택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송상은과의 일문일답.
Q. 오랜만의 복귀작이 여성 1인극이에요. 85분의 시간 동안 홀로 무대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것 같은데요.
“1인극은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예요. 예전에 윤석화 선생님의 1인극을 본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연기력을 가지신 분들만 할 수 있는 극이라고 생각해서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동경해왔어요. 그런데 저에게 제안이 와서 우선 놀랐고, 공연이 많이 다양화됐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죠.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정말 너무 어려워서(웃음) 어떻게 해야 할 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일단 대사 분량이 어마어마하고, 관객과 소통할 수도 없고 뮤지컬처럼 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까 제가 다 끌고 가야 하잖아요. 개막까지 한참 남았는데도 연습하는 기간 동안 대사 까먹는 꿈도 꾸고 그랬다니까요. 어떻게 보면 지금 데뷔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아요.”
Q. 같은 ‘로리’ 역을 맡은 유주혜 배우와도 많은 얘기를 나눴을 것 같아요.
“우리가 대체 무슨 용기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웃음), 힘들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죠. 무엇보다 무대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어요. 1차적인 목표는 (김세은)연출님과 작가님이 바라는 바를 오롯이 해내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유)주혜 언니와 제가 다르다 보니까 같은 로리를 연기하더라도 전혀 다르다는 거예요. 서로 연기를 보면서 ‘이거 완전히 다른 공연인데?’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연기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이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이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왜 언니랑 제가 더블이 됐는지 알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Q.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이 어떤 극인지 점점 궁금해지는데요? ‘로리’는 어떤 아이인지도요.
음,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수다 힐링극’이에요. 사춘기 소녀 로리가 쫑알쫑알 수다를 떠는 극이죠. 로리는 사춘기 소녀인데 은근히 거친 부분도 있고, 본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느끼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아이에요. 조금 기분파이기도 하고, 독특한 면도 있죠. 문과, 이과 감성이 합쳐진 그런 친구라고 생각해요. ‘자발적 아싸’ 같은 느낌이랄까? 일단 그 어린 나이에 아빠의 유골함을 가지고 북극으로 떠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멋있잖아요. 포스터가 굉장히 서정적으로 나와서 슬픈 극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오열극’은 아니니까 눈물 흘릴까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물론 감동적이고 슬픈 부분도 있지만, 로리의 수다를 지켜본다는 마음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Q. 이제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습하시면서 기억에 남거나 힘든 순간이 있었다면요?
“하루 하루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해요. 저희는 매일 ‘해내자, 할 수 있다’ 이런 전투태세로 연습을 했거든요. 아무래도 힘든 건 대사가 안 외워질 때죠. 저는 제가 대사를 잘 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틀리니까 자괴감이 들어서 머리를 막 쥐어 뜯었어요. 이게 제가 무대를 좀 길게 쉬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웃음). 1인극이다 보니까 대사 틀리거나 까먹으면 도와줄 상대 배우도 없고, 무대 위에서 완전히 혼자잖아요. 그래서 이번 목표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그런 유연한 배우가 되는 거예요.”
Q. 직접 연기하시면서 느낀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의 매력을 알려주세요. 또, 관극을 망설이는 관객분들에게 ‘영업’도 좀 해주세요.
“이 극은 곧 로리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이예요. ‘나도 이 나이 때,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했었지.’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작가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보러 오시는 분들도, 로리라는 아이의 성장기를 통해서 ‘내가 이렇게 성장해왔구나.’하고 자신을 비춰보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영업, 음… 우선 극이 너무 길지 않구요, 티켓 가격도 비싸지 않고 할인도 많이 합니다(웃음). 또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떠났을 때,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사람을 기리고 살아야 할 지에 대한 그런 부분도 많이 배우고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Q.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이후에도 무대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럼요! 매체 활동도 있어서 많은 작품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1년에 한두 작품은 꼭 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은 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