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평화, 자유를 외치는 배우 이승현이 데뷔 19주년을 맞아 다섯 번째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바쁘게 달려왔던 순간들과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 지난달 22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Q. 서울자치신문 구독자들에게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서울자치신문 독자 여러분 배우 이승현입니다. 반갑습니다.
Q. 지난달 19일에 콘서트가 끝났는데 어떤 계기로 콘서트를 진행하게 되셨는지, 또 무사히 끝낸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1년 정도 캐나다에서 체류하게 돼서 지금 아니면 못 하겠다 싶어 추진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정이 생겨서 콘서트가 무산되는 바람에, 이럴 바엔 내가 직접 열어야겠다 한 거죠. 더 빨랐으면 연습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고 늦었으면 예정된 출국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앞뒤로 급하게 한 것 같네요.
(제작이 노란장미스튜디오로 되어있던데) 직접 콘서트를 준비하려니 사업자가 필요했어요. 친분 있는 회사들에 부탁할까도 생각했는데, 상업적이지만 상업적이지 않은 공연을 만들고 싶더라고요. 그러다가 마침 박현숙 작곡가님이 만들어 놓은 사업체가 있어서 그걸 사용하게 된 거죠. 제가 제작사 대표도 다 해보고(웃음). 작곡가님이 이름을 한참 고민 했는데, 노란 장미의 꽃말이 우정, 질투, 이별, 사랑이라서 드라마에 필요한 요소는 다 들어가 있어서 이걸로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저에겐 미오 프라텔로의 추억도 간직할 수 있고요.
콘서트는 굉장히 기쁘고 고마웠어요. 제가 아무리 콘서트를 열고 싶다고 해도 봐주시는 분들이 없으면 시작할 수 없으니까요. 도와주신 분들과 팬들께 감사했어요.
Q. 콘서트에서 제일 신경 쓴 부분은 어느 부분인가요?
당연히 음악이죠. 선곡부터 편곡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는 가수로서 노래를 잘하고 싶었어요. 공연 준비 과정이 꼭 결혼식 같았는데, 노래에도 집중해야 하지만 제작자로서 아주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야 했어요. 동시 진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제가 하지 않으면, 퀄리티가 떨어지는 게 바로 보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셋업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합주도 하고 노래도 불러봤는데, 막상 뛸 노래는 별로 없고 조용한 노래가 많아서 이승현이란 인간이 조용한 쪽의 음악을 좋아했구나 싶었어요. 마지막에 한 콘서트가 <아킬레스 콘서트>였는데, 분위기가 달라서 오시는 분들이 재미없진 않을까 고민하긴 했어요. 물론 마지막엔 틀에 나를 맞출 필요는 없겠구나 싶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웃음).
Q. 콘서트에서 좋았거나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괜찮은 퀄리티의 극장에서 콘서트를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어요. 제 생각에는 홍대에서 가장 좋은 공간이었다고 봐요. 음향도 좋았고 노래 부르기도 편했는데, 특히 처음으로 적자가 아닌 콘서트였고(웃음). 다음에도 이 극장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객석 수가 적어서 관객분들이 아쉬우셨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너무 감사하고 기뻤지만 그게 제일 아쉬운 점이 아닐까요?
의외로 콘서트 할 공간이 많지 않아요. 콘서트를 진행하려면 조명, 악기들을 세팅해야 하는데, 대학로는 모든 악기를 들여와야 하고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모되거든요. 그에 비해 홍대는 콘서트홀이라 저만 들어가면 되는 상황이었고요. 처음엔 넓은 공간에 간이 의자를 배치하는 것도 생각했는데 우리 관객들이 그런 문화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단차가 있고 푹신한 의자가 있는 잘 어울리는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좌석이(웃음). 회차를 늘리면 될 거로 생각했는데 지인들이 그건 모든 시간에 다 오라는 뜻이라고 얘기를 해줘서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네요.

Q. 수술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코안 쪽에 염증이 생겨서 뼈에 문제가 생겼고, 미루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때가 <비더슈탄트> 시작 전이었어요. 공연 2주 전이 제일 바빠서 빠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컴퍼니에서 양해받아 수술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은데 삼 일 입원하고 다음 날 극장에 나가서 리허설하고 일주일 만에 공연에 올랐어요.
힘들고, 조금 더 쉬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코로나 이슈도 있었고 공연은 서로의 약속이니까요. 관객들이 표를 구매하고 교통비, 숙박비를 들여서 정해진 시간에 올 때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다 똑같은 거잖아요? 저 때문에 공연이 멈추게 되면 절대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든 한 것 같아요. 요즘엔 오랫동안 보다 보니 관객들이 아는 사이같이 느껴져요. 그럴수록 더욱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 기회에 수술 후에 컨디션이 떨어져 있어서 같이 한 동료들이 더 힘들었을 텐데 정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네요. 그리고 저는 건강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Q. 1년 정도 캐나다에 계신다고 하셨는데 가게 되신 이유와, 이후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면?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작년 봄 여름부터 고민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제가 쉼 없이 일했기 때문에 안식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내년에 이사계획이 있어서 바로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박현숙 작곡가와 상의한 끝에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기보다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견문도 넓혀보자 해서 가게 되었어요.
결정은 의외로 바로 했는데, 생각만 하다 보면 못 가게 되거든요. 아껴 쓰고 모아둔 것도 털어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에요. 한 달 전부터 짐을 보내야 하는데 박현숙 작곡가도 저도 너무 바빠서 준비는 하나도 안 된 상태로 떠나야 할 것 같아요. 고생길이 훤한데, 늙어서 그때 캐나다 가서 고생하면서 재밌었다고 추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박현숙 작곡가는 너무 바빠서 가서도 일에 매달려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고 아예 안 오는 건 아니고 중간에 잠깐 들어와요. 언제 온다고는 말씀 못 드리지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있었다 정도로만 말씀드릴게요(웃음).
Q. 마지막으로 늘 응원해 주는 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너무 애쓰지 마시고 편하게 계시면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사랑, 평화, 자유 최고 그리고 건강 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