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우의 개념은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의회에서 의장석을 중심으로 왼쪽이 급진적인 자코뱅당, 오른쪽이 온건한 지롱드당 의원들이 앉아 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좌·우가 시작되었지만, 짧은 다리는 길게, 긴 다리는 짧게 만들었던, 이른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방불케 할 만큼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분법이다. 삶이란 게 한없이 섬세한데 왜 좌와 우밖에 없는 것일까. 지금이야말로 이념을 좌·우가 아닌 상·하로 나누어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좌·우의 다툼은 흡사 '팽이 돌리기’를 닮았다. 팽이 돌리기를 해본 사람은 안다. 땅에서 팽이를 돌려 남의 팽이와 부딪쳐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 하는 식으로 승패를 가름한다. 하지만 공동체의 미래와 번영을 위해서는 '팽이 돌리기’보다는 '연날리기’가 제격이다. “누가 하늘 높이 올라가나” 하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게 연날리기의 묘미 아닌가.
과연 무엇이 품격 있는 이념이고 무엇이 저급한 이념일까. 이념의 높낮이를 가늠하려면 진실의 무게가 중요하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이라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진실 앞에서도 궤변으로 우긴다면 위선자다. 물론 살다 보면 거짓말이 없을 순 없다. 일찍이 플라톤은 '고상한 거짓말’이라고 하여 누구든 통치자와 군인 및 생산자 가운데 하나로 태어난다고 했다. 그러나 왕후장상의 씨가 없음이 확실할진대, 이런 플라톤의 거짓말을 믿을 이유는 없다. 다만 오늘날에도 믿어야 할 거짓말이 있다면, 산타클로스가 아닐까. 그는 존재하진 않지만,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되면 갑자기 놀라운 존재감을 발휘한다.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집집마다 맞춤형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야말로 겨울의 전설이 되었다. 산타클로스가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살벌해지고 우리의 어린 시절은 훨씬 더 삭막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산타클로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거짓말들이 난무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다. 따뜻한 봄날 벌이 부지런히 꿀을 만들 듯 쉴 새 없이 거짓말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버젓이 살아있는 연예인 강호동을 왜 죽었다고 하나. 만우절은 없어진 지 오랜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괴담이 광속도로 퍼지는 거짓말 바이러스가 되고 있다. 3년 전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던 거짓말들이 돌아다녔는데, 요즈음엔 한·미 FTA가 괴담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한·미 FTA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 골수 반미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유럽연합(EU)과의 FTA에는 식민지 이야기가 없었는데 미국과의 FTA에 대해서는 웬 '을사늑약’인가. 진실 앞에 정직하다면 “매국이냐, 애국이냐”가 아니라 “쇄국이냐, 개항이냐”라는 물음을 던져야 하지 않나.
또 하나, 이념의 위·아래를 구분하는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진정으로 믿는가 하는 문제다. 얼마 전 한진중공업에서 309일간 크레인 농성을 하던 노동자 김진숙을 위해 여섯 번에 걸쳐 희망버스가 동원되었고 비장한 마음으로 참여한 좌파진보 인사들도 많다. 그런데 통영의 딸을 보라. 못난 가장 때문에 죄 없는 모녀들이 북한에 끌려가 짐승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는데, 이 통영의 딸을 위해선 희망버스는커녕 구호 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친북이념이란 게 높은 게 아니라 낮은 데 자리 잡고 있다고 하는 증거가 아닌가.
지금 북에는 수많은 '김진숙’과 허다한 통영의 딸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권을 위해선 농성도 불사하고 머리를 깎고 단식까지 하는 남쪽 사람들이 왜 북쪽에서 울부짖고 있는 그들에 대해선 꿀 먹은 벙어리와 눈뜬 장님이 되는가. 흔히 좌파 인사들은 우파가 기득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타박하지만, 그보다 수백 배나 더한 북한의 기득권자에 대해서는 왜 쓴소리 한마디 못하나. 북한 문제만 나오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행동하다가 미국 문제만 나오면 골수 반미주의자가 되어 “국회를 점령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국회에 최루탄까지 터뜨린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흙탕물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일 터다.
좌·우가 대치하는 이념 다툼이 의미 없다고 하는 주장은 맞을는지 모른다. 좌·우보다는 위·아래가 대치하는 다툼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진실과 허위,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되는 이념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할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