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란 무엇인가. 동명의 책으로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원칙 아래에서 생각해 보면 왕정이란 참으로 불균등하고 불공정한 정치 체제로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 이 뮤지컬의 주인공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 정략결혼의 대상자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옷차림과 같은 가시적인 것에서부터 한 사람을 명명하면서 동시에 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이름조차 프랑스식으로 바꿀 것을 요구받는다. 시대의 흐름에 눈 감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그의 과오이나 그러한 잘못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놓아 본다면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대장장이의 삶을 꿈꾸던 루이 16세보다는 언제나 왕비로서의 자신을 인지하고 있었던 마리의 쪽에서 무게 추를 한두 개쯤 빼 주고 싶은 것이다. 마리는 화려하고 방탕한 생활의 상징으로서 지탄받았으나 실제로 프랑스의 국고가 바닥난 지는 이미 오래였고, 귀족층의 사치는 극에 달해 있었으며 루이 16세는 미국 독립 혁명에 개입해 미국을 지원하고 실질적인 이익은 얻지 못함으로써 프랑스의 경제에 더욱 악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이 권력을 잡고 싶은 자들에게는 가장 적당한 희생양이었을 것이다.

소득과 부를 제대로 나누어 받지 못한 채 어떠한 기회도 없이 의무와 권리만을 지고 있던 민중들은 봉기한다. 이러한 민중들 중 앞서 나선 이가 하층민 여성인 마그리드 아르노이다.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마리에 대한 소문에 선동되어 자크 에베르와 함께 마리를 모함하고 민심을 동요시키는 데 앞장선다. 마그리드가 마리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마침내 권력 교체와 그를 둘러싼 일들의 전말을 알게 되는 것은 마리를 곁에서 지켜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무언가를 잘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것을 깨닫는 일과 같다. 달리 말하면 무엇을 찬찬히 관찰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리는 자신에게 샴페인을 끼얹은 마그리드를 용서했으나 그것은 마그리드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궁까지 숨어 들어와 그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한 생각은 없이 빈민층에 대한 피상적인 동정으로 행한 일이었고, 마그리드는 마리를 미워했으나 그것은 실제로 마리가 행한 일과는 상관없이 왕실과 귀족층에 대한 반감과 뜬소문 때문이었고 그를 추켜세운 다른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우리의 정의는 무엇인가. 역사의 커다란 움직임은 사실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서 시작되어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건들이 모여 이루어지며 그 속에는 사건의 수보다 많은 진실과 거짓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때로 모순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왕정 체제를 바꾸기 위해 공화정을 도입했으나 프랑스 시민들이 막상 맞이한 것은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였고 모든 민중이 대의를 위해 일어난 것은 아니며 그 밑바탕에는 정권을 노리는 상류계층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마그리드 아르노의 깨달음을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쥐고 나온 것은 그러한 과정을 목도함으로써 갖게 되는 냉소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는 메시지이고, 또한 바로 이 질문이다. 우리의 정의는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