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사진 ㅣ 연극열전 제공
▲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사진 ㅣ 연극열전 제공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할 때, 바로 그 지점에서 비극은 발생한다.

사회가 여러 방면에서 저마다 급격히 변화하고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서로 부딪히며 그럼에도 아직 서로를 잘 몰랐던 그때를 배경으로 하여 연극열전 열 번째 시즌의 첫 번째 작품 ‘엠 버터플라이’는 시작된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레이시즘의 한 갈래인 막연한 편견과 일종의 대상화로 이루어진 오리엔탈리즘 또는 ‘내려다보기’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환상, 그리고 그에 더해진 여성에 대한 편견. 상술한 모든 것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가득한 이 연극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단 한 순간이라도 상호 진실된 순간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 이다.

르네 갈리마르(배수빈)는 프랑스의 외교관으로서 부임해 간 북경에서 자신의 환상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여인 송 릴링(최정우)을 만난다. 르네가 평생 이상형으로 삼아 왔던 푸치니의 ‘나비 부인’에 나오는 ‘초초상’을 연기한 경극 배우 송은 단돈 100엔으로 가질 수 있는 초초상과는 달리 첫 만남에서부터 다가가기 어려운 차가운 태도를 보인다. 그러다 르네가 극장에 발길을 끊자 돌연 태도를 바꾼 송은 르네에게 만남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며, 르네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버터플라이가 바로 송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시작하여 이어진 둘의 관계는 결국엔 르네가 송을 위해 프랑스 정부의 기밀을 빼내게끔 하는 동력이 된다.

송은 시종 르네를 치켜세워 주며 지극히 순종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르네는 송에게서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동시에 남성성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프랑스어권 철학에서 ‘인정(reconnaissance)’이라는 개념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인간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당신은 그러하다는 타인의 판단과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르네는 자신이 인기 없고 무능력한 남자가 아니라 사실은 한 여자를 품어 안을 수 있으며 또한 그 여자의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남자라는 속성을 누군가에게 설득시키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때 르네의 앞에 나타난 송은 르네가 그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을 증명해주는 버터플라이로서 존재했고 그렇기에 르네에게 송 역시 의심의 여지 없는 여성이어야만 했다.

▲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사진 ㅣ 연극열전 제공
▲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사진 ㅣ 연극열전 제공

그렇기에 르네는 자신의 특성을 증명하려고 시도할수록 필연적으로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르네가 상상하는 자신은 실제의 자신과는 다른 환상적인 자신이며, 르네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실제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갖춘 자는 자신이 아니라 외부에 있으므로 그 증명은 가느다란 지지대 하나로 허공에 떠 있는 발판과도 같이 불안정하다. 르네는 일생 그 자신에 대해서도, 송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으며 그러한 자아의 흔들림은 결국 이 연극의 결말을 이끌어내게 된다.

그 어떤 진실도 르네와 송의 사이에는 없었기에 그 어떤 진실한 사랑도 그들의 사이에는 없었다. 단 한 순간도 르네는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 속의 송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송을 사랑한 적이 없으며, 그 환상에 대한 사랑조차 일종의 자기애에 불과했다. 송 역시 소용돌이치는 정치적 국면에 휘말린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르네에게 포장된 허위 뒤에서 거짓을 고하며 그를 이용해 왔을 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제의 자신을 가면 뒤에 숨긴 채 무감한 시선과 말투로 일관하던 송은 극의 마지막에 가서야 꾹꾹 눌러 놓았던 감정들을 폭발시킨다. 르네에게 나를 보라고 외치는 송의 고함은 평생을 거짓으로 살며 그 역시 한 인간이자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 체제의 이익과 르네의 환상 유지를 위한 꼭두각시로 이용당해 온 분노와 마침내 끝의 끝까지 몰려서도 실제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환상을 택한 르네에 대한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배신감이란 누군가를 믿었을 때 생길 수 있는 감정이 아니던가. 르네가 송을 몰랐듯이 송 역시 르네를 몰랐다. 그리고 환상 속 이야기는 마침내 비극으로 끝난다.

*인물 소개는 기자가 관람한 회차 캐스트 기준입니다.

저작권자 © 서울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