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인생의 사소한 결정들이 엄청난 차이로 이어져. 결정의 갈림길마다 우주가 분열되고... 이게 당신 우주야. 무한한 거품 속을 떠다니는 기포 하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나오는 이 대사로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떤 작품을, 어떤 역할을 만나고 선택하고, 또 선택받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생기는 게 바로 ‘배우’라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캐스팅보드’가 배우의 필모그라피를 따라가는 새로운 기획, ‘필모그라피 인터뷰’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필모그라피 인터뷰의 첫 주자로 지난 6일, 대학로 인근 한 카페에서 배우 최정우를 만났습니다. 그는 <스물>의 경재로 데뷔해 <어나더 컨트리>의 파울러나 <히스토리 보이즈>의 락우드와 데이킨, <작은 아씨들> 트라이아웃 당시 브룩, <빵야>의 길남과 신출 외, 그리고 <엠. 버터플라이>의 송 릴링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왔는데요. 지금까지 만나온 작품과 역할들, 또 앞으로 어떤 만남을 통해 어떤 배우로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한 최정우의 솔직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엠. 버터플라이’ 막공으로부터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네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요즘은 ‘빵야’ 연습을 매일 하고 있어요. ‘엠. 버터플라이’ 때는 체중 감량을 했었는데요, ‘‘빵야’는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있기 때문에 체력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보니 같이 연습하는 분들과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즐겁게 지내고 있죠. (반려묘)밀키, 쿠키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스무 살, 무대에 서기로 마음 먹다

2017년 데뷔 이후, 매체와 무대를 오가며 얼굴을 알렸는데요. 어느덧 연차로 치면 데뷔 8년차예요. 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데뷔 이후 현재까지 어떤 경로를 거쳐왔는지 들려주셨으면 해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많이 보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러시아에서 살다가 돌아왔을 때, 일반고를 다니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진로는 한 번 선택하면 바꾸기 어렵잖아요.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서 한예종 예술경영학과랑 영화과에 지원을 했는데, 예술경영학과에 먼저 합격해 다니게 됐죠. 이거 너무 tmi인가요?(웃음). 다니다 보니까 예술경영학과가 연극원 소속이기도 하고, 주로 공연 위주로 공부하기 때문에 그때 처음 연극을 접하게 됐어요. 처음 봤을 때는 좀 생소했고 어려운 부분도 많았는데, 화면 속이 아닌 현장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전달받는 메시지들, 배우들의 에너지 같은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여기에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영화에 대한 동경, 사랑, 또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어우러지면서 좀 슬럼프가 왔어요. 하고 싶은 게 연기가 되어버렸으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요. 물론 학교에 정말 좋은 연기과가 있지만 전 제 전공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진로를 두고 생각이 많았어요. 만약 할 거라면 진지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가벼운 생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주변 소중한 분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죠. 고민을 엄청나게 하면서 휴학을 했고, 군대에 다녀왔죠. 그리고 짧지만 연기학원도 다녀보고 하면서 저랑 굉장히 오래 일하게 된 매니저님을 만났는데, 감사하게도 그때 그 분이 연기를 배우려면 연극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매체 오디션, 연극 오디션 가리지 않고 많이 봤고 ‘스물’에 합격해서 데뷔하게 됐습니다. ‘스물’도 영화 원작이라 경쟁이 치열했던 기억이 있네요. 사실 ‘스물’ 할 때는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상태에서 미숙하게 시작하다보니 힘든 점이 많았는데, 연습과정부터 공연 장면 만들기, 배우로서 작품을 만났을 때 과정 등 여러 부분에서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아요.

대학로에서 ‘최정우’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어나더 컨트리’와 ‘히스토리 보이즈’로 이어지는 구간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연극 무대에 데뷔한 뒤 가장 많이 연기한 역할(락우드와 데이킨)이자 가장 오래 참여한 극이 ‘히스토리 보이즈’일 텐데요. ‘히스토리 보이즈’를 통해 배우로서 얻은 것, 그리고 락우드에서 데이킨으로 ‘넘겨받’았을 때의 소감과 2023년 지난 시즌 락우드와 데이킨을 함께 연기했을 때의 느낌 등이 궁금합니다.

우선 ‘어나더 컨트리’와 ‘히스토리 보이즈’ 모두 작품의 결이 제가 하고 싶었던 연기에 닿아있었어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깊이감 있는 텍스트가 좋았고 역할 하나하나에 다 서사가 있는 극들이었죠. 그래서 파울러가 됐을 때, 락우드 오디션에 붙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히보’를 하면서 얻은 것… 좋은 연출님, 좋은 선배님들을 만난 거죠. 작품을 하면서 좋은 연기를 갖고 계신 좋은 선배님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분들이셔서 많이 배웠어요. 제게는 그게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히스토리 보이즈’라는 제목 그대로 저에게 ‘역사’가 생긴 거니까. 할 때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무척 소중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10주년 때 락우드와 데이킨을 함께 한 것도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어요. ‘처음 락우드를 했을 때와, 지금의 내 락우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것도 궁금했고, 락우드/데이킨으로서 다른 역할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사실 초반에는 락우드로 무대에 있는데도 어윈이나 헥터가 데이킨을 부를 때 움찔하거나, 반대로 데이킨을 하고 있는데 락우드를 부르면 움찔했던 기억도 있어요(웃음). 어쨌든 정말 좋았고, 또 감사한 경험이었죠. 

이렇게 역할간 서로 ‘넘겨받는’ 게 있어서 더 특별한 작품인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어 데이킨, 스크립스였던 형들(박은석, 안재영)을 어윈으로 다시 만났을 때도, 최정우 본체로서는 어떻게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는데 막상 그분들이 가져온 어윈을 보는 순간부터는 데이킨으로서 집중이 굉장히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재미있게 한 것 같아요. 어쨌든 히보는 제게 너무 감사한 작품이라, 다시 온다면 또 하고 싶어요. 데이킨도 하고 싶고, 좀 더 나중에는 어윈도 하고 싶죠. 

▲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 배우 최정우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사진 ⓒ 김수현 기자

‘엠. 버터플라이’와 만나다

올해 ‘엠. 버터플라이’ 무대에 섰어요. 공연을 마쳤으니 <엠. 버터플라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허심탄회하게 나눠보고자 하는데요. 사실 송 릴링이라는 인물 역시 쉽지 않은 인물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엠. 버터플라이’에 참여하게 된 건 배우로서 큰 도전이자, 어쩌면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마 ‘히스토리 보이즈’ 10주년 공연이 끝나고, 드라마를 찍고 있을 때였을 거예요. 연극열전에서 송 역할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을 해주셨는데, 응시 자격에 ‘오페라, 경극의 안무 및 노래와 무술을 소화할 수 있는 자’라고 되어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노래와 춤이 중요한 역할이면 소화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해서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네이처 오브 포겟팅’을 보러 갔는데 그때 다시 연락을 주시고, 대본을 보내주셨어요. 그 전까지 대본은 못 보고, 실화 기반이니까 어떤 역할인지만 검색해서 알아본 상태였거든요. 

사실 노래도 노래지만, 송은 매력적인 만큼 어려운 인물이라서 제안을 받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배우로서, 아직 내가 만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대본을 읽으니까 텍스트가 매우 좋고, 송이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자 배우로서 좋은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하고 싶어졌죠. 그래서 고민을 정말 많이 하다가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결과론적으로는 선택을 잘한 것 같고, 배우로서뿐 아니라 제 인생 자체에서도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될 작품이 된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송 릴링은 매력적인 만큼 무척 어려운 역할이잖아요. ‘최정우의 송 릴링’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러모로 고충이 많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처음에는 인물이 가진 외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거기에 빠져서 목소리 톤이나 마드모아젤에서 무슈로 바뀌는 지점들 같은 부분을 구축할 때 조금 힘들었어요. 그런데 고민하다 보니 결국 그냥 ‘송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송의 내적인 상황이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시간을 들여 더 많이 생각하다 보니까 외적인 부분들은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아요. 또, 오대석 선배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했던 작품들 대부분을 함께 한 가족같고 아버지 같은 분이신데, 늘 제가 어려워할 때마다 저에게 여러 개의 선택지를 주시고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 저는 뮤지컬을 했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엠. 버터플라이’ 하면서 혹시라도 목이 잠기거나 목소리가 안 나올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잠도 일찍 자고, 프로폴리스랑 꿀도 챙겨먹으면서 관리 엄청 했어요(웃음). 

앞서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는 얘기도 해주셨는데, 송 릴링을 만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변화가 좀 있을 것 같아요. 어때요? ‘엠. 버터플라이’가 배우로서 앞으로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을까요?

송이라는 역할 자체가 제게는 너무 큰 도전이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대본, 긴 호흡, 이제까지와 다른 결의 인물을, 그것도 매우 큰 역할을 연기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도전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배운 게 정말 많았거든요. 공연하는 동안 상대 역인 르네 형들마다 느낌, 노선이 무척 달랐고 같이 무대에 서면서 제가 반응하는 것도 달라지는데 거기서 오는, ’나, 연극 너무 사랑하는구나, 연기 정말 재미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엠. 버터플라이’ 덕분에 연극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고 더 좋은 텍스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 작품을 통해 부새롬 연출님, 그리고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게 된 것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고요. 인복이죠.

극 중 송의 마지막 인사처럼, ‘엠. 버터플라이’를 끝낸 최정우에게 스스로 인사할 수 있다면 어떤 말로 인사하고 싶나요?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극 중 ‘후회하게 될 거야’라는 대사를 변용해서 그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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