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신 : 페이퍼 샤먼' 무대 ㅣ 서울자치신문 DB
▲ '만신 : 페이퍼 샤먼' 무대 ㅣ 서울자치신문 DB

 

혼을 담은 소리, 예민한 자들의 위무

창극으로 재창조된 굿과 샤머니즘의 세계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강렬한 햇살과 푸른 기운으로 여름에 성큼 들어서는 계절, 전통과 현대 창극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국립창극단에서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박칼린 연출(음악감독)과 손을 잡고 창극으로 재창조된 굿과 샤머니즘의 세계 <만신 : 페이퍼 샤먼>을 선보였다.

창극 <만신 페이퍼 샤먼>은 한국 무속문화와 샤먼즘을 다루는 순수 창작극으로 남들과 다른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 '실'을 통해 만신(萬神)의 특별한 삶과 그들의 소명의식을 담아낸 작품으로 지난해 부임한 국립창극단 유은선 예술감독의 첫 신작이다.

박칼린은 서울대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하고 박동진 명창에게 판소리 5바탕 중에서도 가장 고난위도인 '적벽가'를 배웠기에 그의 창극 도전이 사실 놀라지는 않다.

이번 작품은 박칼린이 연출.극본을 맡고 전수양 작가가 집필에 함께 참여, 명창 안숙선 선생님이 작창을 유태평양이 작창보를 맡아 판소리, 민요, 민속악을 근간으로 작창 소리를 중심에 두고 무가와 여러 문화권의 토속음악을 가미했다.

동서양 음악적 감수성을 모두 갖춘 박칼린이 연출한 창극은 어떨까? 이번 작품에는 신예부터 중견까지 국립창극단 전 단원이 총출동하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가는 길이 설렌다.

“치유사, 힐러, 무당, 마녀, 마법사, 수호자, 위치 닥터, 드루이드, 투앗드다나안, 만신, 샤먼...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예민한 자들이여.” 작품의 첫 대사처럼 이 작품은 예민한 자들의 이야기로 이들은 감정이입 능력이 지나쳐서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느낀다고 한다.

▲ '만신 : 페이퍼 샤먼'  배우들 ㅣ 서울자치신문 DB
▲ '만신 : 페이퍼 샤먼'  배우들 ㅣ 서울자치신문 DB

공연의 시작은 북유럽 샤먼 '이렌'이 있는 치유사의 숲에서 시작된다.

1막에서는 남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난 소녀 '실'이 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되는 과정을 2막에서는 만신이 된 ‘실’이 오대륙 샤먼과 함께하는 여정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각 대륙의 비극과 고통을 다양한 형태의 굿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강신무 '실'역에 김우정과 박경민이 더블 캐스팅 되었는데 일욜 막공 '실'역에 김우정, 북유럽 샤먼 '이레' 역에 김금미, 미국 원주민 샤먼 '아이야나' 역에 민은경, 아프리카 샤먼 '바바카' 역에 김수인, 아마존 샤먼 '이카로' 역에 최용석 등 30명의 창극단 배우들은 각 대류의 샤먼과 동물 등 시공간을 넘나드는 캐릭터들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신들린 듯한 몸짓과 방울소리, 바람소리, 동물소리, 아프리카 리듬부터 아일랜드 켈트 음악까지... 언덕, 개울, 나무 북유럽 숲부터 열대 아마존 우림까지 다양하게 변화화는 무대와 각양각색의 자연 소리를 구음으로 묘사, 신비로움과 함께 무대를 한껏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굿판에서 사용되는(무구) 종이를 활용한 의상과 소품에 한지를 사용해 무대를 활용한 것이 독특하다. 종이에 글을 쓰면 책이 되지만 종이를 물에 담그면 녹아 사라지는 음양이 이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무대를 집중력 있게 이끌어가는 실 역의 '김우정' 재발견.

극중 모든 새소리와 동물소리를 낸 소리꾼 최용석 님과 무대를 내려와 관객 속으로 다가온 배우들. 특히 두루미 '루미'과 바람 역의 국악 아이돌 '김준수' 소리만 잘한게 아니었네... 춤도 기가 막히게 춘다. 그가 나오면 공연 분위기부터 달라지는걸 보면 작은 역할이라도 아우라가 큰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창극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판소리 일부로 창극에서 간간히 무속음악과 무속 양식을 선보였지만 무대에 온전하게 구현한 것은 과감한 시도이다.

해원씻김굿이라고 했던가? 색다른 소재인 '굿'이 창극과 만나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와 닿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창작,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기에 창작자는 늘 전쟁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국립창극단은 그동안 다양한 창작을 시도해 놀라움과 함께 큰 감동을 주었기에 이번의 새로운 시도 역시 대중들의 큰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 '만신 : 페이퍼 샤먼'  배우들 ㅣ 서울자치신문 DB
▲ '만신 : 페이퍼 샤먼'  배우들 ㅣ 서울자치신문 DB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큰 굿판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서사를 방해하는 과도한 영상과 무언가 조화롭지 않은 미묘함에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한지 예술의 미학적 분위기라고 하던데 종이와 조명 만으로도 충분히 전달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1부 '실'이 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되기까지 과정이 지루함이 없지 않고 2막 오대륙 샤먼과 함께 각 대륙의 비극과 고통을 굿으로 치유하는 여정 또한 수정이 필요한 듯 싶다. 5대륙의 셔먼들과 함께 풀어내는 다국적 굿판은 어떨까 살짝 기대했는데 나열식 방식의 전개는 볼거리는 많았지만 다른 창극단 작품에 비해 감동은 적었다.

전통음악과 무용에서 굿은 긍정적이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굿과 샤먼은 여전히 과학과 미신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 '파묘' 등 굿과 무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시대를 반영한 섬세한 미학으로 수정 보완해 다시 올린다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공감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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