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6세인 A부인은 요즘 들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예민해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20대에 결혼 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두 당당하고 슬기롭게 해쳐나가 늘 주변으로부터 능력 있는 현모양처라는 이야기를 들어왔고, 그 힘들다는 고3 수험생 뒷바라지도 몇 년 전에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는 아이들도 커서 한숨 돌렸고 남편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지위에 있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상황인데도, 언제부터인지 외롭고 허전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화병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 이곳저곳이 쑤시기도 하며, 가끔씩은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작년부터 갱년기가 시작된 것은 알고 있었고 스스로도 아쉽거나 섭섭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점점 의욕이 줄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서는 기억력도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드라마에서 나온 조기 치매가 시작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며, 이런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가끔 훌쩍 떠나거나 내가 삶에서 없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위의 A부인의 사례는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이야기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폐경이라는 특징적인 변화로 인해 변화를 빨리 알아챌 수 있으며, 남성의 경우에도 중년기에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갱년기에 접어들면 호르몬 및 여러 신체 기능의 변화로 인해 다양한 증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감소는 뇌에서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조절에 관여하여 우울증에 쉽게 걸리게 만들며, 또한 신체에 열감, 두근거림, 홍조, 야간발한 등의 증상을 일으켜 불면증과 감정 기복이 더욱 심해지도록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사람이 갱년기에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년기는 인생의 단계에서 특히 많은 희생과 책임을 요구 받고 상실을 경험하는 시기이며, 또한 폐경과 함께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위치, 가족 내에서의 역할, 인생의 목표나 가치 등 여러 가지 질문들과 함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이다. 특히 남편이나 자녀만을 바라보며 바쁘게 살아오거나 어렵고 힘든 삶을 무조건 참아가며 열심히 살아오던 분들도 이 시기가 되면 신체적인 변화와 함께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우울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갱년기 이전에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경험한 분, 생리 주기에 따라 기분의 변화가 심했던 분,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기분의 변화가 심한 분, 그리고 최근에 사별이나 심한 상실을 경험한 분들에게 특히 쉽게 갱년기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치료는 갱년기에 대한 기본적인 치료인 호르몬 보충 요법이 신체 증상을 완화시키고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호르몬 보충 요법만으로는 갱년기의 신체 증상은 호전되어도 우울증은 남아있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전문가의 상담 및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더 많다. 치료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으로 우울증이 좋아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문제들이 개선되었다고 환자들이 말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암 발생 위험이나 내과적인 상태 등으로 인하여 호르몬 보충 요법을 하지 못하는 분들도 약물치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우울증 외에도 갱년기의 두근거림, 발한, 홍조, 열감에 우울증 치료 약물 중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억제제(SNRI)가 특히 효과적으로 증상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울감이 심하지 않은 분들에게도 호르몬 보충 요법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갱년기 우울증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갱년기의 변화를 호르몬의 변화에 우리 몸이 적응하고 반응하는 과정이라고 여유롭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며, 몸과 마음에 여러 변화가 시작되어도 무조건 많이 쉬거나 검증되지 않은 식품을 믿는 태도보다 운동과 생활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며 스스로 활력을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몸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변화와 마찬가지로 기분의 변화도 내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 변화에 의한 증상이라고 생각하여 우울감이 길어지거나 깊어지기 전에 전문가를 찾아 평가 및 도움을 구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라고 생각한다.

출처 아주대병원 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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