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블랙 코미디 연극 '대학살의 신'이 5년 만에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야스미나 레자'는 연극 <아트>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로 지식인의 허상을 비웃으며 스노비즘(snobbism)을 풍자하고 부조리한 사회와의 타협을 유쾌한 방식으로 꼬집는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중산층과 지성인의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인간의 이중성에 대하여 시니컬하면서도 코믹하게 풀어낸 블랙 코미디로 전작 <아트>보다도 더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고 강렬한 작품이다.

2010년 국내 초연되었는데 연극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관객과 평단의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시즌 공연으로 이어졌다.
11살인 두 소년 브뤼노와 페르디낭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페르디낭에게 맞은 브뤼노의 앞니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브뤼노의 부모 미셸과 베로니끄는 페르디낭의 부모 알랭과 아네뜨를 집으로 초대해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의논하려 한다. 교양과 매너로 가득했던 두 부부의 만남은 대화가 거듭될수록 유치찬란한 설전으로 변질되고 걷잡을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내용이다.
5년 만에 관객을 만나는 연극 '대학살의 신'에는 두 쌍의 부부, 네 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미셸 역에 김상경.이희준, 베로니끄 역에 신동미.정연, 알랭 역에 민연기.조영규 아네뜨 역에 임강희 영화와 드라마에 볼 수 있었던 배우들이 연극 무대로 복귀해 눈길을 끈다.
연극 '대학살의신'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겪는 아이들의 싸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상의 작은 사건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대학살은 큰 욕심이나 탐욕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쟁과 같은 떼죽음을 말하는데 작가는 제목을 왜 대학살로 지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유발한다.
작가인 야스미나 레자는 '대학살의 신'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폭력적이고 유치한 근성에 관한 이야기로 '내 안의 파괴적인 욕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변호사와 작가를 풍자의 대상으로 하는데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발생한 유혈사태, 프랜시스 베이컨(화가), 오스카 코코슈카(화가) 등 교양이 똘똘 뭉쳤다고 믿고 있는 중산층 인물들의 대화에는 가식과 위선, 허위의식, 우월의식이 드러나 있다.
속물 변호사 '알렝' 역의 민연기 배우는 뮤지컬이 아닌 연극 무대 첫 도전으로 휴대전화만 붙들고 능글거리는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금 등짝 스매싱을 부른다.
불통 남편 때문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토사물을 쏟아내는데 아네뜨. 확보한 성격의 아내에 비해 성격장애를 가진 미셸의 모습은 불통 남편 못지 않은 답답함을 준다.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 베로니끄의 과장된 독특한 웃음소리에서 가식이 느껴진다.
네 명의 배우들의 내공이 느껴지는 탄탄한 연기는 극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관객들은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불구경 만큼 재미난 게 싸움 구경이라고 한다.
교양과 매너가 철철 넘치던 두 부모의 만남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갈팡질팡 유치찬란해지고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의 대립으로 이어지며 분노가 드러난다.
지루할 틈 없이 몰아치는 대화와 격렬한 공방은 애들 싸움이 현실적 어른들의 진흙탕 싸움이 된다. 이 시트콤 같은 상황을 바라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무장해제되어 웃을 수밖에 없는데 왠지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식과 위선, 이기심,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교양이라는 가면에 가려진 우리 내면의 민낯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내년 1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 연극 대학살의신
기간 : 2024. 12. 3(화)~2025. 1. 5(일)
시간 : 화~목 19:30 / 토, 일 14:00 18:00 (매주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