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지킬앤하이드' 프레스콜에서 시연 중인 최정원 ㅣ 사진 김희선 객원기자
연극 '지킬앤하이드' 프레스콜에서 시연 중인 최정원 ㅣ 사진 김희선 객원기자

“결말에 이르러 관객분들에게 가닿고 싶은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 어떤 부분에서 폭력을 소비하고 즐기는 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거죠.”

인간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본성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말할 때, 에드워드 하이드는 단연 첫손에 꼽힐 만한 인물이다. 여기에 더해 선과 악의 대립이 빚어내는 내면의 도덕적 갈등을 통해  인간 본연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그의 대척점인 헨리 지킬 박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연극 ‘지킬앤하이드’는 제목이 말해주듯,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그 유명한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1886)’를 바탕으로 한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원작 소설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더 친숙할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출신 극작가인 게리 맥네어의 손을 거쳐 새로운 감각의 1인극으로 재탄생했다.

2024년 1월 에든버러에서 초연된 지 불과 1년 2개월 만에 국내 초연이 결정된 연극 ‘지킬앤하이드’의 프레스콜 행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TOM 2관에서 열렸다. 퍼포머 역 배우 최정원, 고훈정, 백석광, 강기둥이 일부 장면을 시연한 뒤, 이준우 연출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준우 연출은 “1인극으로 ‘지킬앤하이드’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어터슨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전달한다는 측면이 무척 매력적이었고 그 부분에 대해 배우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재미있게 만들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인간이라는 존재는 복잡하고, 어떤 사람을 선하거나 악하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그래서 이 극도 빛과 그림자를 통해 가려진 부분을 추측하고, 떠올려볼 수 있게끔 하고 싶었다”라며 “음향과 조명을 통해 관객의 상상을 더욱 넓혀주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 한계가 있었지만 해볼 수 있는 건 모두 시도하면서 조금이라도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배우들이 힘들었을 텐데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연극 '지킬앤하이드' 프레스콜에서 시연 중인 백석광 ㅣ 사진 김희선 객원기자
연극 '지킬앤하이드' 프레스콜에서 시연 중인 백석광 ㅣ 사진 김희선 객원기자

퍼포머 역을 맡은 4인의 배우들 각자에게도 이 극은 도전의 의미가 강했다. 백석광은 “대본 받았을 때 재미있어서 빨리 공연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무대 처음 올랐을 때 대사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내가 건강에 문제가 생겼나 싶을 정도’였다”라며 웃었다.

“지금이 아니면 도전할 기회가 없지 싶었다”라고 참여 이유를 밝힌 고훈정은 “그동안 뮤지컬을 많이 해왔는데 뮤지컬과는 느낌이 다르더라. 하나의 막이 있고, 그 막 안의 세계 같은 뮤지컬과 달리 유독 이 작품은 막이 없는 느낌이었다”라며 “수년간 탄수화물을 자제하는 삶을 살았는데 먹어야 머리가 돌아간다고 해서 밥도 먹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퍼포머 중 막내인 강기둥은 “1인극의 장점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성장한다는 점이다. 혼자 하는 만큼 아무리 연습을 해도 결국 관객이 있어야 완성이 된다”라며 “그러다 보면 막공 쯤에야 완성이 되는데 이 공연도 비슷할 것 같다. 이 작품만이 갖고 있는 뭔가 다른 느낌의 ‘비릿함’이 있는데, 이성적으로 풀어내고 감각적으로 체득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라고 털어놓았다. 

또 “어터슨이 이 사건을 겪고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해서 갖는 느낌들, 부정할 수 없고 자신을 들켜버린 듯한 그런 감각을 관객들에게도 전달해주고 싶어서 계속 고민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연극 '지킬앤하이드' 프레스콜 단체사진 ㅣ 사진 김희선 객원기자
연극 '지킬앤하이드' 프레스콜 단체사진 ㅣ 사진 김희선 객원기자

한편 2004년 산울림 소극장에서 올라온 ‘딸에게 보내는 편지’ 이후 오랜만에 1인극 도전에 나선 최정원은 “그때 공연 끝나고 너무 힘들고 하기 싫어서 한 30분 이상을 울다가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최정원은 “그때 이후로 1인극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이 대본을 읽게 됐고, 나 자신과 싸움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A4용지 34페이지 분량인데 글자를 키워서 보느라 68페이지짜리 대본을 들고 다니면서 헝겊이 될 때까지 외웠다”라고 극을 준비한 시간을 돌이켰다.

“나는 리액션의 여왕인데, 그만큼 리액팅을 좋아하는데 액팅밖에 할 수 없다보니 정말 힘들다. 매일 꿈속에서 공연하고 대사가 틀릴까봐 걱정되는 공연은 ‘지킬앤하이드’가 처음”이라고 말한 최정원은 “지금은 (캐스팅이) 4명이라 일주일에 두 번밖에 안 하는데, 매일 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걸 보니 도전해서 성공한 것 같다. 내 안에 정말 필요했던 작품 같고, 언젠가는 ‘시카고’처럼 ‘지킬앤하이드’도 다른 걸 하다가도 대사가 (자동으로) 나올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라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준우 연출은 “어터슨의 시선을 따라가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마지막 지점에 도착하면 ‘우리 안에도 또 다른 하이드가 있을 수 있다’는 질문이 찾아온다”라며 “우리도 자극적인 뉴스나 사건, 잔혹한 범죄 뉴스 등을 두려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찾아보고, 또 소비하는 면이 있지 않나. 그런 질문까지 가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민하고, 만들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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