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포네 트릴로지: 로키'의 롤라 킨(김주연) /사진=아이엠컬처, 쇼노트 제공
'카포네 트릴로지: 로키'의 롤라 킨(김주연) /사진=아이엠컬처, 쇼노트 제공

코미디는 눈물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맞닿아있는 장르다. ‘눈물이 날 만큼 웃기다’는 말처럼,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 게 아니라 웃길 때도 곧잘 운다. 희극과 비극이 서로에게 절대적인 대립항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카포네 트릴로지' 중에서도 '로키' 이야기를 하려면 바로 이 눈물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극이 바로 주인공 롤라 킨(레이디 역)의 75분짜리 눈물이기 때문이다. 황당한 사건의 연발, 꿈인지 망상인지 모호한 상황 속에서 뒤죽박죽 기억들을 하나하나 꿰어 맞추며 ‘배워 나가는’ 롤라가 흘리는 눈물에는 이 극의 장르를 단순히 ‘코미디’로만 규정할 수 없는 진한 페이소스가 담겨있다.

'로키'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개들의 도시 시카고의 은퇴한 쇼걸, 롤라 킨이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남자들을 (마침내, 그리고 정말로) ‘파괴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카포네 트릴로지'가 초연부터 고수해 온 렉싱턴 호텔 661호의 비좁은 무대에 동참하게 된 우리가 롤라의 해방을 눈앞에서, 그리고 그 속에서 지켜보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보는 순간 남자들의 밤을 파괴시킨다는 로키 쇼의 롤라 킨”으로 불리지만, 사실 누구보다 그를 파괴하고자 하는 건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각기 다른 이유와 조건을 대며 롤라의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그리고 몸속으로 들어오기 위해 쉼 없이 문을 두드린다. 그것이 채무를 변제해준 대가로 하는 결혼이든, 사랑이라고 믿었던 불장난이든, 수사인지 장난질인지 알 수 없는 취조이든 그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방 안에 들어온 남자들의 말은 모두 바스라져 사라지고, 결국 방에 들어오지 않은 남자들의 말만이 롤라에게 가 닿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카포네 트릴로지: 로키'의 니코(최호승) /사진=아이엠컬처, 쇼노트 제공
'카포네 트릴로지: 로키'의 니코(최호승) /사진=아이엠컬처, 쇼노트 제공

데이빗과 결혼해서, 니코와 도망쳐서 자유를 얻으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롤라가 원하는 걸 주기는커녕 오히려 ‘자주기를’ 원하고 ‘함께 도망쳐주기를’ 원할 뿐이다. 심지어 하나같이 빈털터리다. 실로 쓸모가 없다. 이쯤에서 롤라는 극 내내 알면서도 모르는 척 기억에서 지우려 했던 그 모든 ‘일어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자신의 해방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뒤늦은 사과를 문 너머에서 받아들이고, 번의 마지막 말에 웨딩드레스 대신 수녀복을 선택하며 롤라는 75분의 이 비애 넘치는 코미디를 통해 결국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배운다. 자신을 구원하고, 해방시켜 자유를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롤라 킨, 그 자신뿐이라는 것을. 그러니 빨간 풍선은 롤라 스스로 들고 떠나는 수밖에.

사진=아이엠컬처, 쇼노트 제공
위 '카포네 트릴로지: 루시퍼'의 말린(정우연) | 아래 '카포네 트릴로지: 빈디치'의 루시(임강희) /사진=아이엠컬처, 쇼노트 제공

'카포네 트릴로지'는 '로키'를 시작으로 '루시퍼', '빈디치'까지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라는 공간에서 20여년에 걸쳐 이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레이디들은 롤라 킨과 말린 니티, 그리고 루시 두스로 등장한다. 1923년 '로키' 속 롤라의 존재가 없었다면, 1934년 '루시퍼'의 말린이 스스로 빨간 풍선이 되어 호텔 문을 나가고 1943년 '빈디치'의 루시가 “자유, 해방, 여자 카포네의 탄생”을 외칠 수 있었을까. 

그러니 (실제 극작가인 제이미 윌크스가 롤라의 결말을 어떻게 정해두었든 간에) 우리는 '카포네 트릴로지'의 세 가지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빨간 풍선을 든 채 문을 열고 걸어 나가는 롤라의 뒷모습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들의 도시, 남자들의 폭력에 물든 이 시카고에서도 여자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관극 포인트
▲ 비좁은 공간, 관객들과 계속 눈을 마주치며 연기해야 하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주연 배우들의 호연. 쉴 새 없이 역할을 바꿔가며 점점 더 녹아내리는 올드맨과 영맨들.
▲ <로키> 한정으로 ‘혹시 이 공연, 이머시브인가요?’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니 내향적인 관객이라면 1열을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아무리 좁고 불편한 극장에서 관극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해도, 바 의자는 좀…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4열은 피하세요. 중간 퇴장 난도도 높습니다.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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