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후근 시인이 신작 시집 『밀월』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시와 수필 양 장르에서 2023년 맑은누리문학 신인상과 문학광장 신인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문단의 관심을 받았고, 제3회 맥파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좌표를 더욱 분명히 했다.
경남 산청출신인 그는 울산문협 활동, 울산공단문학회 회장 역임, KMAC 전문위원 경력 등 다양한 현장에서 언어를 다듬어 왔고 최근 울산광역시·울산문화관광재단의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창작자로서의 탄탄한 힘을 다시 확인받았다.

새 시집 『밀월』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나’라는 존재가 겪어온 변화와 흔적을 세심하게 포착한 작품집이다. “나는 먼 길을 돌아왔는데 너는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시인의 문장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잔향을 향해 손을 뻗는 듯한 인상을 준다. 상실과 회복, 후퇴와 다시 서기, 미련과 포기 사이를 오가는 그의 시편들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으로 향한다.
권 시인의 특징은 사물과 세계를 ‘나와 같은 존재’로 끌어와 읽어내는 능력이다. 가로등, 비둘기, 선인장꽃, 누에 같은 대상을 마주할 때, 그는 그것들을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품은 타자로 바라본다. 「메기 한 마리」나 「꽃상추」, 「삼베」 등의 작품에서도 생활 속 소재들이 새로운 의미로 재조립되며 서정이 깊어진다.
반대로, 동일성이 성립하지 않는 세계 역시 이 시집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실종」에서는 흔히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진 사회를, 「빈대와의 동거」에서는 인간의 모습이 뒤틀린 현실을 드러낸다. 「덫」, 「중앙」, 「농락」은 정치와 세태를 향한 시인의 시선이 얼마나 예리한지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권후근의 시 세계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사물 의인화를 통해 관념을 구체화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깔창」, 「빠루」, 「보도블록」, 「두부」, 「틈」, 「강돌」 등은 일상에서 흔히 만나지만 쉽게 지나치는 사물들이 시인의 시선에서 인간의 표정과 심리를 얻는다. 표제작 「밀월」은 양은 냄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작품으로, 시인의 창작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시편으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