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사진가의 어떠한 설명 없이도 갖가지 많은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사진…, 그런 사진이 아닐까.”
“좋은 사진작품은 어떤 것인가”라는 당돌한 질문에 국제적으로 이름난 원로 사진가 요세프 쿠델카(79)는 잔잔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예술작품처럼 사진도 관람객 각자의 경험, 감성에 따라 해석을 달리한다.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작업할 때 피사체에 대한 평소 내 생각 같은 감성적 부분을 배제하려고 애쓴다.”
한미사진미술관(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 마련된 쿠델카의 첫 국내전 ‘집시’는 그의 말처럼 사진을 통해 인간 삶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진전이다.
전시장에는 1962~1971년 사이 유럽 곳곳의 집시를 촬영한 흑백 사진 100여 점이 걸렸다. 이젠 사진계 거장으로 불리는 그의 초기 작품들이자, 그를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연작이다.
이 집시 연작은 1975년 미국에서 출간한 첫 사진집 ‘집시’로 엮어졌다. 사진집 출간 전인 1968년 8월 소련군의 프라하 침공을 사진으로 알리며(당시는 익명) 주목받고 있던 그는 이 사진집을 계기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사진집은 국내 사진계에서도 주목 받았다.
그의 사진들에는 집시들의 일상적인 삶, 그야말로 그들의 ‘희로애락애오욕’이, 늘 소외되지만 꿈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의 치열한 삶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말을 건네는 듯하다. 흑백의 강한 대비,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가 인물과 인물의 세세한 표정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정면으로 응시하는 피사체의 눈이 강렬하고 거칠게 다가온다”는 말에 쿠델카는 “옆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포즈를 취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집시들과 얼마나 교감을 나누고, 신뢰 관계를 형성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쿠델카는 그저 집시들의 내밀한 삶을 드러내고자 하는 게 아니다. “집시들을 통해 우리 인간이 지닌 보편적 가치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얘기하고픈 것은 휴머니티에 관한 것이다. 나는 집시의 삶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했다.” 집시들의 희로애락은 곧 우리 모두의 희로애락인 셈이다. 집시들의 삶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다.
쿠델카는 전시장이나 사진집을 꾸릴 때 작품 배치에 극도로 민감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를 들이대고 스스로 작품을 배치할 정도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장 작품 배치도 한번 살펴볼 만하다.
전시를 기념, 쿠델카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사진집 ‘요세프 쿠델카 집시’를 펴낸 한미사진미술관은 전시 특별프로그램으로 그의 풍경 연작 ‘장벽(WALL)’의 작업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쿠델카 성지를 찍다’도 4월1일 서울극장 인디스페이스에서 1회 상영한다.
전시일정: 4월 15일까지 / 전시장소: 송파구 한미사진미술관 / 전시시간: 10:00~19:00 / 전시문의: 418-1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