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라이프 사진전

 

1945년 8월 14일, 일본의 패배가 방송으로 발표되자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축포가 터지고,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춤추고, 키스했다. 사진기자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는 취재를 위해 엄청난 군중을 헤치던 중 수병(水兵)과 간호사의 키스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드라마틱한 이미지는 ‘수병의 키스’라는 이름과 함께 전쟁에서의 생존자로 남은 안도감과 승리의 환희를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남았다. 이 사진이 실렸던 잡지가 바로, 전설적인 사진가들의 요람으로 불리는 포토매거진 ‘LIFE(라이프)’다.
‘라이프’는 1936 년 잡지왕 헨리루스가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라(To see life, to see the world)’라는 야심 찬 슬로건을 걸고 출발한 사진 잡지로, 한때 주간 판매량 1,300 만 부를 기록하며, 사진이 가장 위대한 시대에 우뚝 서있었다. ‘라이프’는 ‘포토스토리(Photo Story)’라는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이다. 포토스토리를 통해 인간과 세상의 이야기, 인간의 딜레마, 도전, 고통을 담아냈다. 이것은 세상을 이미지의 시대로 이끌어낸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로버트 카파, 유진 스미스, 필립 할스만,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 마가렛 버크 화이트 등 당대 최고의 사진가들은 ‘라이프’를 통해 자신의 대표작들이 알릴 기회를 가졌다. 전설적인 사진가들은 ‘라이프’를 통해 보석 같은 재능을 맘껏 펼치며, 1 천만 장의 불멸의 기록을 우리에게 남겼다.
‘라이프’의 귀중한 기록을 만날 전시가 국내에서 지난 7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라이프사진전’이 개최됐다. 이번 전시는 1956년 이래 지난 60년간 열린 4 번째 ‘라이프 사진전’으로 어떤 사진전시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주최측은 그동안 국내 전시에서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130 여점을 엄선했다. 전시작은 ‘라이프’의 넓은 스펙트럼처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부터 평범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차별과 투쟁했던 시민 운동의 현장, 광기의 시대에 스러져간 민족의 영웅들, 미지의 세계로의 본능이 이끌어낸 우주탐사, 낭만적인 시대를 살아갔던 스포츠맨과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모습들은 지난 세기의 역동성을 생생히 전한다.
전시를 처음 여는 것은 20 세기 영웅들의 얼굴이다. 하나의 꿈을 외쳤던 마틴 루터킹 목사, 한줌의 소금을 들고 영국의 식민 통치를 흔들었던 마하트마 간디, 기득권의 모순을 비판하며 수상을 거부했던 장 폴 사르트르(노벨상 거부), 존 레논(영국 여왕 훈장 거부), 마론 브란도(아카데미상 거부)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의 두번째 섹션인 ‘시대’에서는 반복 되어서는 안될 역사의 교훈들을 만날 수 있다. 올해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블랙리스트, 미국판 세월호 사건인 안드레아 도리아호 사건, 인종 차별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물대포로 흑인들을 무차별로 진압하는 백인경찰들의 모습은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한국과 관련된 사진들도 눈에 띤다. 60년대 미국에 진출했던 최초의 걸그룹 김시스터즈, 통일과 휴전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승만 대통령, 역사 교과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 날의 풍경,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를 구출했다고 알려진 흥남철수 사진도 관람 포인트다.
‘라이프’는 뉴욕시민의 대다수가 반경 800km 를 떠나본 적이 없는 1930년대에 탄생했다. 당시 ‘라이프’는 가정에서 지구 반대편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이었다. 지금은 과거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여기, ‘라이프’의 창간인 헨리 루스가 80년 뒤의 인류에게 남긴 세상으로의 초청장은 여전히 가슴 벅차다.

전시일정: 10월 8일까지 / 전시장소: 한가람미술관 / 전시시간: 11:00~20:00 / 전시문의: 1588-5953 / 관람요금: 9,000~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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