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첫 장편 영화 ‘숨바꼭질’로 560만의 관객을 동원한 허정 감독이 4년 만에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장산범’으로 돌아왔다. ‘숨바꼭질’이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인 ‘집’을 통해 낯선 자의 침입으로 인한 공포를 그렸다면 ‘장산범’은 낯선 이에게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를 통해 소리가 주는 공포를 다루었다.

소리에 대한 공포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 마녀 세이렌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난파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해님달님’에도 호랑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오누이들을 홀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렇듯이 목소리는 신화와 전래동화에서 사람에게 가장 친숙하고 그리운 형태로 나타나 그들을 현혹시킨다.

시어머니(허진)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희연(염정아) 가족은 시골 장산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5년 전 실종된 아들을 잊지 못하는 희연은 겁먹은 채로 숲 속에 숨어있던 여자애(신린아)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희연은 그녀에게 모성애를 느끼지만, 민호는 딸 준희의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는 소녀에게 의구심을 품는다. 소녀가 온 뒤 하나 둘씩 실종되는 사람들, 마을의 이상한 기운과 소녀의 등장은 무관하지 않았고 결국 시어머니와 남편이 사라진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것’의 목소리, 누군가 우리 가족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

'장산범'은 눈을 감아도 가려지지 않는 공포를 다룬다. 바로 '그것'이 흉내 내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목소리들이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요소요소에 등장하며 등장인물들을 서서히 파멸로 이끈다.

허정 감독은 “가족은 일상적인 형태의 사회적 존재이다. ‘장산범’을 통해 소리로 나타난 존재가 구성원들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괴물이 아닌 악령이었던 장산범, 한 가족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귀신의 존재, 여느 공포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스토리지만 이들이 느끼는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압도적 사운드는 관객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안겨준다. 전형적인 공포영화에 식상한 관객이라면 청각을 통해 새로운 공포를 체험할 수 있는 영화다.

 

김정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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