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Misery)’의 사전적 의미는 고통, 빈곤이지만 폴 셀던이 쓴 ‘미저리’라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 1987년 내놓은 동명의 소설을 시작으로 1990년 영화화되어 캐시 베이츠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다. '당신의 넘버 원 팬'을 자처하는 한 여인의 무시무시한 사랑과 집착의 드라마 ‘미저리’는 그 이후 광적인 집착의 아이콘이 됐다. 그 이후로 지난 2015년 브로드웨이 최초 스릴러 연극으로 만들어져 브루스 윌리스의 첫 연극 도전으로 화제를 모았고 국내에서는 지난 2월부터 '미저리'가 연극으로 다시 태어나 또 다른 재미와 느낌을 전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폴 셸던은 눈보라 속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는다. 폴은 미저리의 열성 팬을 자청하는 여성 애니 윌크스에게 구출되는데, 그녀는 다리가 부러진 폴을 정성껏 간호해 주지만 그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으며 '노브릴'이라는 진통제만 계속 먹인다. 또한 이따금씩 드러내는 히스테릭한 애니의 행동 때문에 폴은 점점 의심을 품게 된다. 뒤늦게 미저리 시리즈의 완결 편을 본 애니는 미저리가 사망한 것을 알게 되고 그동안 보였던 히스테리를 훨씬 초월하는 광기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폴을 스토킹하거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지만 이는 문자 그대로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저리를 창조해낸 폴의 능력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것이다. 애니는 폴에게 미저리 시리즈의 새 작품을 써서 시리즈를 이어가라고 강요하고, 그녀의 강압에 폴은 결국 그에 따르게 된다. 새로운 미저리 소설을 쓰던 폴은 한편으로는 탈출을 계획하며 애니가 집에 없을 때 몰래 약, 식량 그리고 식칼을 챙긴다. 그러나 애니는 휠체어 자국으로 폴의 행동을 짐작하고 방비책으로 폴이 탈출하지 못하게 망치로 다리를 부러뜨린다. 게다가 실종된 폴을 찾다 애니의 집 근처까지 온 보안관을 산탄총으로 날려버린다. 폴은 끔찍한 상황 속에서 소설을 거의 다 써가고 애니는 소설이 탈고되는 대로 폴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알아챈 폴은 소설을 탈고한 직후 갑자기 원고를 난로에 넣어서 불태워 버리고, 이를 막으려는 애니의 빈틈을 노려 공격한다. 처절한 싸움 끝에 폴은 총상을 입지만......
 
폴이 있는 방 과 그 외부를 주무대로 매력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와 미치광이 여성팬이 벌이는 심리극 '미저리'는 왜 진작 이 작품을 연극으로 보지 못했을까 싶을 만큼 흥미로운 2인극이다. 이야기 자체는 영화 속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지만 연극은 두 주인공의 전쟁과 같은 갈등을 표출하며 110분동안 진행되는데 김승우, 김상중, 이건명, 고수희, 이지하, 길해연의 미친 연기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몰입하게 만든다. 무대와 적절한 음악과 조명의 사용도 한몫을 한다. 원형무대의 회전은 집의 내부와 외부를 고루 보여주며 현실감을 더한다.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과 번뜩이는 조명은 애니의 끔찍한 외로움과 뒤틀린 이성, 벼랑 끝에 선 폴의 상황을 극대화한다. 애니의 광적인 집착은 요즈음 미투운동으로 인해 드러난 성폭력가해자들의 행동과 연결선상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낭만이고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일방적이고 배려 없는 사랑은 폭력이다. 마찬가지로 애니의 사랑도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즈음의 상황에 비추어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 ‘미저리’는 4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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