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제3정당 창당 논란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은 가운데 박 시장이 행정2부시장에 문승국 희망제작소 고문을, 박 시장의 정책추진기구인 가칭 '희망서울위원회'에 서왕진 환경정의연구소장을 임명하면서 박 시장이 정치세력화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시민단체 출신들로 박 시장의 주요 인맥 가운데 일부 인사들이다. 문승국 행정2부시장 내정자는 전남 순천고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근무한 뒤 서울시로 자리를 옮긴 후 성북구 부구청장과 서울시 물관리국장 등을 거쳐 지난 2009년 9월부터 박 시장의 희망제작소 고문을 역임했다.
서왕진 정책특보는 서울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환경정의시민연대 일부 기구인 환경정의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했고, 이번 서울시장 선거캠프에서 뛰다 박 시장의 정무 분야를 보좌하게 됐다.
박 시장이 시민단체 출신들을 서울시 주요 보직에 발탁한 것은 '박원순 색깔'을 내기 위한 밑그림 그리기 작업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무상급식 심판'으로 물러난 오세훈 전 시장과의 차별화된 행보를 위해서 내 사람 심기는 박 시장으로선 선결과제인 셈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시민단체 인사들을 임명한 것을 두고 박 시장이 벌써부터 외연확대에 욕심을 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의회 민주당도 논평을 내고 "서울시정 바깥에서 정치세력화에 몰두한다면 민주당 시의회와 소통과 협력도 단절될 것"이라며 경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시장의 정치세력화 문제는 당장 제3당 창당 수준을 밟지 않더라도 박 시장의 코드인사를 통해 외연이 확장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박 시장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범야권의 도움을 받은 이상 정치권에서 진행되는 야권 통합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야권통합 과정에서 박 시장의 정치세력화가 구체화될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야권에서 제기되는 통합론은 제각각이다. 당장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 중심의 통합론을, 친노진영은 '혁신과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야당과 시민단체 세력이 병행해서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민주당 일부에서 우선 가능한 세력들끼리 합치고 진보정당은 나중에 통합하는 단계적 통합론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통합논의 과정에서 박 시장은 지분을 갖는데 수월한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 꾸준히 나돌고 있는 안철수 신당에 참여한다는 얘기다.
명지대 신율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교수는 제3당의 당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안 교수가 신당을 만들면 이념을 초월한 다양한 인물들이 총망라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학교로 돌아가겠다"던 안 교수가 박 후보 캠프에 나타나 편지를 전달하는 등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이 안 교수의 정치적 야망을 보여주는 한 예다.
안 교수로서는 밑져야 본전인 상황에서 박 시장을 지지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정치판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이따금씩 등장하는 것도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에 대한 갈망과 신비주의를 확산시키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안 교수가 현재의 여야구도를 뛰어 넘는 정치구상을 하고 있을 것이고 이번에 투표장에 나와 박 시장을 찍은 사람들은 박 시장이 아니라 안 교수를 대통령으로 밀어주기 위해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설이 설득력 있게 회자되고 있다.
안 교수가 그간 보여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에 비춰볼 때 특정 정당에 가입하거나 협력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에 따라 안철수 신당이 탄력을 받을 경우 박 시장이 민주당이 아니라 안철수 신당을 택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는 셈이다. 민주당으로선 박원순의 배신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현재 안 교수에게 전현직 정치인들이 '뜻을 모아보자', '힘을 합치자'는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안 교수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구체화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안 교수에 대한 민심이 확인된 이상 박 시장의 정치세력화의 귀결점은 안철수 신당쪽으로 가닥을 잡을 공산이 크다.
이에 대해 박 시장 측은 "야권 통합 과정에 추임새는 넣겠지만 시장 일 이외에 어떤 정치적 행보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박 시장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행보를 안 교수와 궤를 같이 할 것이라는 데에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야권통합 로드맵에서 박 시장의 행보의 방향은 이미 강을 건넜다는 관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