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따른 여권 위기와 관련해 한나라당내 소장파 의원 25명이 청와대에 쇄신요구를 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의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에서 "공개적 답변을 않고 있는데 그게 나의 답변이다. 그들의 요구를 알고 있으며 거기에 개의치 않는다는게 아니다"라고 대답해 이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너무 안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구상찬 김성식 김세연 신성범 정태근 등 5명의 초선 의원들은 지난 4일 서울시장 선거 패배 등 여권 위기와 관련해 이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포함한 '대통령의 5대 쇄신'을 촉구했다. 8일에도 당내 소장·쇄신파 의원 25명이 대국민 사과와 정책노선 변경을 요구했다.

이들은 "여권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기조의 변화가 국민의 마음을 돌리는 첩경이다. 먼저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대통령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공식 요청했다.

측근 비리가 터졌는데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언급한 점, 측근 낙하산 인사, 내곡동 사저 문제, 서민의 민생고 등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 이들은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 공약 폐기 △성장 고용 복지가 선순환하는 국정기조로의 전환 △‘직언’을 못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교체 및 인사 쇄신 △권위주의 시대의 비민주적 통치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는 실정 개혁 등을 요청했다.

이처럼 한나라당내 소장·쇄신파 의원들이 당 지도부를 겨냥하지 않고 청와대를 겨냥한 것은 서울시장 선거의 패인이 'MB심판론'에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28일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이 ‘오만과 불통’의 청와대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차기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박 전 대표쪽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친이 세력이 분열하지 않고 차기 정부에서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길 이 대통령이 바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대북지원 결정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78억원 집행을 승인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1년만에 재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필두로 하는 시민단체 세력과의 경계를 허물어 중도좌파 지지층을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내년 대선을 위한 발판마련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역시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같은 한나라당 식구지만 대선 '필승'을 위해 이 대통령과 선 긋기 작업에 나서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8일 당내 소장·쇄신파 의원 25명이 최근 공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와 정책노선 변경을 요구한 것에 대해 “(쇄신파의) 그 얘기도 귀 기울여 들을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은 "박 전대표가 이 대통령 탈당을 몰고 가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는가 하면, "쇄신파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한 데 이어 박 전 대표가 거기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좀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떻든 서울시장 선거를 매개로 한나라당 소장·쇄신파들은 자기세력에 대한 파이를 키우기 위해 허수아비 지도부인 홍준표 대표를 뛰어 넘어 바로 청와대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가 연대를 과시하고, "한나라당의 안전지대로 분류되는 서울 강남이나 영남지역에서는 50% 이상 대폭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어 이 대통령측은 긴장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

결국 이 대통령이 소장·쇄신파의 요구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끝까지 공천권을 포기하지 않고 국정쇄신을 하려는 모순적 태도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탈여의도 정치를 외치며 중도정치를 주장했던 이 대통령이, 쇄신을 요구하는 한나라당 의원들로 말미암아 그간의 당 혁신의지가 권력연장을 위한 명분찾기에 지나지 않았음이 방증되면서 사면초가에 몰리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벼랑 끝에 몰린 이 대통령이 소장·쇄신파들에게 꺼내 보일 승부수가 무엇일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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