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백은혜가 지난 18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서울자치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백은혜가 무대에 다시 선 건 지난해 연극 <비 BEA> 이후 꼭 1년 여 만이다. 백은혜는 “그동안 스케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사한 경우도 있고 해서 오랜만에 공연을 하게 됐는데 딱 필요할 때 좋은 작품을 만난 것 같다”고 <오만과 편견>과 함께한 소감을 전했다.

<비 BEA>를 포함해 <섬>, <베르나르다 알바>, <태일> 등 뚜렷한 메시지가 있는 강렬하고 호소력 짙은 작품들을 해왔던 백은혜에게 <오만과 편견>은 또다른 도전이었다. 박소영 연출의 권유로 <오만과 편견> 재연에 합류한 백은혜는 “그동안 해왔던 공연과 달리 조금 더 힘을 빼고 객관적으로 해야하는 공연이라 초반에는 오히려 힘들기도 했다. 힘을 어디까지 빼야하는지,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게 맞는지, 또 내가 뭘 가져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공연뿐만 아니라 내 삶의 시간 속에서, 앞으로 걸어갈 길을 위해서 필요했던 객관적인 눈을 갖고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덧붙인 백은혜는 “이전 공연들은 하면서 많이 아프기도 하고 마음 고생도 했었는데 <오만과 편견>은 그런 게 없다. 끝나면 후련하고 ‘해냈다’ 싶은 성취감도 든다. 잘 때도 ‘아, 오늘 어떻게 했지?’ 하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래서일까, 백은혜는 <오만과 편견>에서 맡은 배역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공연 정말 희한하다”는 말로 말문을 연 백은혜는 “관객분들이 ‘미시즈 베넷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냐’ 그런 얘기도 해주시는데, 모든 캐릭터에 다 애착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순간순간, 공연을 마칠 때마다 조금씩 더 마음이 쓰이는 캐릭터도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샬롯 루카스가 그렇다.

백은혜는 “등장하는 짧은 순간 동안 자기 호소를 해서 그런지 요새는 샬롯에게 애착이 간다. 소설에서는 마음 약한 모습이 나오지만 캐릭터에 대해 배우들끼리 얘기를 나눌 때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을 느꼈다. 샬롯이 리지에게 ‘나는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고 예쁘지도 않아, 내가 원하는 건 이거고 지금 너는 이해 못하겠지만 언젠가 이해하게 될 거야’라는 얘기를 하는 부분이 이상할 정도로 좋다. 그 순간만큼은 샬롯이 반짝였으면 좋겠다”고 애정을 담뿍 드러냈다.

A1의 상대역인 A2 역시 무수한 배역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충도, 보람도 같다. 자신이 연기하는 배역에 맞춰 바뀌는 상대의 연기를 지켜봐 온 백은혜는 “어느 날 (홍)우진이 오빠가 아버지인 미스터 베넷을 연기했을 때 마지막 결혼 축하 대사를 하는 순간 마음이 뭉클해지고, 또 어느 날은 (이)동하 오빠의 제인이 늘 그렇지만 무척 아름답고 우아해 보일 때가 있다. (이)형훈 오빠도 모든 배역이 잘 어울리지만 유독 콜린스를 할 때 웃음을 참기 어렵다. 내가 웃음을 정말 잘 참는 편인데 형훈 오빠의 콜린스를 보곤 코웃음을 치면서 웃어버린 적도 있다. (신)성민 오빠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인데 이 작품을 하면서 장난기를 많이 억누르고 있는 것 같다. 캐서린 남작 부인을 연기하는 것을 볼 때마다 느낀다”고 함께 한 공연의 기억을 떠올렸다.

▲ 배우 백은혜가 지난 18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서울자치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오만과 편견>, 무대에서 문학의 가치를 찾다

200년 전 고전을 무대로 올리는 일에는 여러 가지 고민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고민하는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백은혜는 “좋은 글이고 좋은 대본이지만 줄거리를 따지자면 현대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 당시는 그랬을 지 몰라도 지금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결혼 장려’나 ‘오만하지 말라, 편견 갖지 말라’ 이런 건 아니지 않나”고 되물은 뒤 “<오만과 편견>이 지금 주는 메시지가 뭘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두 명의 배우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2시간 15분의 시간 자체가 이 작품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고 얘기했다.

그의 말대로 인터미션을 포함해 2시간 15분의 긴 시간 동안 A1과 A2 역을 맡은 두 배우는 구슬땀을 흘리며 시시각각 바뀌는 인물들을 연기해 <오만과 편견>의 이야기를 영화처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백은혜는 “그 때는 그런 시대였구나, 지금은 이런 부분이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극을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하나의 가치이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 아닐까”라고 자문하며 “옛날 책을 다시 펴서 읽어주는 것도 지금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책 한 권을 읽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느끼거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재미를 느끼는 것, 이런 것들이 <오만과 편견>이 갖는 가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년을 뛰어 넘어, 21세기인 지금 우리가 <오만과 편견>을 보고 즐거워하는 이유다. 백은혜가 출연하는 연극 <오만과 편견>은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상연된다.

김희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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