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 최수진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표현은 ‘스펙트럼이 넓다’는 말이다. 2009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쉼 없이 무대에 오르며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 온 최수진. 어느덧 대학로의 확실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난 최수진을 지난 4월 초,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기, 피화당’ 막공을 앞두고 있어요.
“창작 초연은 만들 때마다 항상 힘이 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완벽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올렸다는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공연하면서는 하나도 안 힘들더라고요. 막공까지 후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려져요.”
-’라흐 헤스트’부터 시작해서 ‘아가사’, ‘여기, 피화당’까지 계속 글을 썼거나, 쓰는 여성 문학인을 연기하고 있는데요. 실제로도 문학을 좋아하시나요?
“고등학교 때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저희 엄마가 항상 고전문학을 읽어야 그걸 기초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거든요. 요즘은 대본 밖에 못 읽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웃음). 저는 배우고, 텍스트를 몸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직업이라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극 안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캐릭터를 맡는 게 굉장히 좋았어요.”
-요즘은 피화당과 서부를 오가며 지내고 계시는데, 극도 캐릭터도 온도 차이가 좀 있는 편이잖아요. 혹시 어려운 부분은 없으신지 궁금해요.
“원래 무대 끝나면 ‘아, 오늘도 재밌었다’하고 털어버리는 성격이에요. 배우 최수진으로서 ‘스위치’ 전환이 어렵거나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뮤지컬의 좋은 점 중 하나가 음악의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피화당에 가서 피화당의 선율을 들으면 가은비가 되고, 웨스턴 스토리에서 오프닝 넘버를 듣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다 보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라 크게 어려움은 없어요.”
-그럼 ‘웨스턴 스토리’ 이야기도 좀 해볼까요? ‘웨스턴 스토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알려주세요.
“초연을 봐서 더 빨리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보면서 정말 재미있었고, 정연 언니가 워낙 잘하시기도 했지만 조세핀이 많이 보였거든요. (하면)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늘 전작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웨스턴 스토리’가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봤기 때문에 이 극이 힘들 걸 예상하셨을 것 같기도 한데요.
“예상했죠, 했던 분들이 애드립이 많다며 겁을 많이 줬거든요(웃음). 그래서 미리 겁을 많이 먹고 들어갔기 때문에 오히려 괜찮았어요. 애드립이 많고 ‘내용이 없다, 서사가 없다’고는 하지만, 막상 대본을 보니 이야기도, 저희가 해야 할 것들도 있어요. 단순하지만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히 있기 때문에 보시는 분들도 그걸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수진만의 조세핀’을 만들기 위해 가장 신경 쓰고 계시는 부분이 뭔지 알려주세요.
“극단 배우인 ‘케이트’라는 인물이 ‘조세핀’인 척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조금 과장되고 인위적인, 외화 더빙 느낌으로 출발을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제가 예전에 했던 ‘자넷 와이즈(록키호러쇼)’와 겹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거죠.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최)유하 언니가 하는 ‘작은 아씨들’을 보러 갔어요. 거기서 유하 언니가 “아빠를 위해 쓰고 있거든요”라는 나레이션을 서울 사투리로 하는 거예요. 유하 언니랑 (신)의정 언니랑 저랑 셋이 한창 SNL의 서울 사투리에 빠져있었거든요. ‘나만 알아들어서 속상하다, 너무 웃기더라’고 후기도 보냈는데, 제가 조세핀 말투 때문에 고민한다고 했더니 유하 언니가 서울 사투리로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서울 사투리를 쓰는 최수진 조세핀이 탄생한 거군요?
“극 중에서 동부/서부에서 왔다는 지역적인 언급도 있고, 7~80년대 옛날 느낌도 좀 나면서 괜찮을 것 같았어요. 원래 서울 사투리가 좀 나긋나긋해서 조세핀한테는 안 어울릴 것 같아 제 버전으로 완성을 시켰고요. (성종완)연출님도 재밌겠다고, 더 많이 써보라고 하셔서 비중을 조절하다 지금 정도가 된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만족도도 높아보여요.
“제가 무척 좋아하고, 그만큼 빠져있는 밈이었는데 잘 어울리는 극을 만나 쓸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어요. 유하 언니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웃음). 의정 언니에게도 컨펌 받았는데, ‘정말 재밌다, 꼭 보러 가겠다’고 해줘서 든든해요.”
-그럼 내친 김에, ‘최수진이 생각하는 케이트의 후사(後事)’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아마 쉽진 않겠지만, 헐리우드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서 야무지게 연기하고 있지 않을까요? 몇 안 되는 ‘케이트’의 대사 속에서 찾아보자면, 배우로서의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 같아요. 와이어트(프레디)를 구박하면서 공연 망친 게 한두 번이냐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3류 배우라는 말에 상처받고. 또, 꿈을 위해 헐리우드로 떠나고요. 그래서 저도 한 사람의 배우로서 케이트에게 공감가는 부분이 있거든요. 음… 그리고 라스베가스 간 프레디와 재결합할 수 있도록 준비(?) 좀 하고?(웃음).
-그러고 보니 웨스턴스토리 개막을 앞두고 인스타그램에서 웃참 대비 전략으로 ‘웃으면 그날로 은퇴다’라고 생각하겠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은퇴 위기가 있었나요?
“너~무 있었어요. 진짜 위기는 한 두 번 정도? (원)종환 오빠와 첫 공연 때였는데요, ‘안 되나요?’ 넘버에서 뒤를 돌아보며 ‘꼬끼오’ 소리를 내는 디테일이 있거든요. 연습실에서 분명히 봤던 장면인데, 무대 위에서 전혀 예상 못한 리듬으로 하는 걸 맞닥뜨리니까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심지어 돌아서서 하는 거라, 저희한테만 보이고 객석은 안 터져요. 종환 오빠가 아예 저희 웃기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 순간 살짝 조세핀이 아니라 ‘최수진’이 들어와버려서 아찔했죠. 정말 너무 웃겨서 악착같이 슬픈 생각을 하면서 눈앞의 관객 200명을 보면서 정말 힘들게 참았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웨스턴 스토리’를 꼭 보러 오라고 한 말씀 해주세요.
“심오하게, 정신과 마음을 힘들게 소모하면서 극을 보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무대 위 저희의 이야기를 따라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 쟤네가 지금 이런 얘기를 하고 있구나’하고 납득하시게 될 거예요. 동시에 ‘쟤네가 대체 왜 저러지?’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요. 극을 보면서 생각하기, 그리고 생각하지 않기, 이 두 가지 마음가짐으로 오신다면 웃음과 감동을 모두 가져가실 수 있을 거예요. 저희도 그 중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재미있게 봐주세요!”
[캐스팅보드] 최수진, "대학로는 내게 인류애 충전의 공간"②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