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회장, 서울교원문학회 자문위원(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월간 문학세계 편집주간시집 : 고향생각 한 잎, 꼭 끼는 삶의 껍질, 나를 앉힐 공간 하나, 지워지지 않는 흠집 외
(사)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회장, 서울교원문학회 자문위원(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월간 문학세계 편집주간시집 : 고향생각 한 잎, 꼭 끼는 삶의 껍질, 나를 앉힐 공간 하나, 지워지지 않는 흠집 외

우리 집은 나와 아내가 살고 있다. 딸아이는 코로나 직전에 결혼했다. 그리고 아들아이는 한동네에 방 한 칸 얻어 살고 있다. 결혼할 나이는 지났어도 못하고 있다가 요즘 분발하여 좋은 소식 들려주겠다며 노력 중이다. 개성이 강한지라 이래라 저래라 해서 말들을 아이도 아니고 웬만한 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면서 대범한척하지만 속으로는 늘 불편하다. 특히 아내는 엄마라는 이름의 직분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같이 데리고 한 집에 살 때나 지금처럼 같이 살지 않을 때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산다. 어느 부모인들 안 그런 부모가 어디 있을까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몸이 따르지 않는데도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요즘의 모습은 둘이서 사는 네 식구가 되었다. 지난 달 아들을 낳은 딸이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을 앞두고 그동안 사진으로만 본 외 손주를 처음 만나게 된다는 벅참 때문일까, 뒤늦게 나이 먹어 접하는 희소식에 부담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시간 맞춰 가서 보고 오면 될 일 갖고 너무 부산떠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남들은 다 관심 갖고 아기 보는 일에 일손을 덜어주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체면치레가 마음을 편하게 뇌두지 않았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도리라는 테두리 안에 역할이 만만치 않았다. 나이 칠십을 훌쩍 넘긴데다가 건강마저 좋지 않아 일하는 사람을 쓰더라도 일주일에 이틀쯤은 일하는 걸 보고 싶어서였다.

오늘도 아침에 아들아이는 어김없이 아침식사를 하러 왔었다. 주말이 아니면 변동 없는 우리 내외의 공식 업무였다. 아침 먹는 시간도 일정치 않아 매주 달라진다. 출근 시간이 오전 8시, 9시, 10시로 바뀌는 거였다. 그때마다 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한다.

딸아이도 집에 올 때나 우리가 가서 만날 때면 꼭 반찬을 몇 가지해서 주다보니 습관이 되다시피 요리를 해야만 한다. 애초에 내 생각은 예전에 우리 부모님들께서 하시던 것처럼 가부장적인 모습을 상상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미 무너진 사회적 변화 속에서 혼자 버텨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세대는 부모님께는 효도하고 자식들에게는 또 다른 대상으로 늘 관심을 가져야하는 부모라는 의무 같은 역할이 마치 다 그런 것처럼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해도 본인들이 그 비용이나 살 집을 마련하는 일에도 걱정을 하고 비용의 대부분을 지불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해도 그만한 저축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나서면 꼼짝 없이 으레 그런 것처럼 하게 된 것이다. 좋은 경사스런 일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부담들은 결국 결혼을 꺼려하고 기피하는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뿐인가 더불어 등장하는 것이 자녀를 안 낳는 이유였다. 키우는 데도 손이 많이 가지만 가르치는데도 경제적인 출혈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둘이서만 지내면 아이들한테 지출되는 생활비를 줄일 수 있고 경제적인 여유도 즐길 수 있다는 지론이 성립된다.

그나마 결혼이라도 하면 부모로서 할 일을 다 마쳤다는 홀가분함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 성장한 자녀를 가정도 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걸 바라다 볼 때마다 마음은 편치 않다. 어디 그뿐이랴, 지내다 남들은 다 자식 낳고 잘 사는데 부모들이 관심도 안 갖고 무관심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산다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점차 사회적인 구조가 변화되어가면서 부모로써 짊어져야하는 의무가 너무 가중되어가고 있다. 자녀들이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아니다. 국가차원에서 복지차원의 대책을 강구하지만 극히 일부에 대한 임기응변식의 대체방안인 셈이다.

아들아이는 결혼을 할 생각을 하지 않다가 근래에 접어들어 마음에 드는 상대가 생겼는지 주말이나 휴가를 낸 날이면 으레 차를 사용하겠다며 자동차 키를 가지려왔다. 그러기 전에는 운전연수 겸해서 우리 내외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그 재미도 이제는 포기해야 했다.

운전면허는 일찍 따놓았어도 필요성이 없어 장롱면허가 되었다가 차를 사가지고 연습을 부지런히 하는 바람에 운전 실력도 많이 늘었다. 웬만한 곳이면 곧잘 타고 다녔다. 아들아이가 사용하지 않으면 내가 사용하기도 한다. 새 차를 사용하는 데는 시행착오를 많이 한다. 가이드북을 들여다 봐야하는데 예전 차를 쓰듯 하다보면 허둥대다가 눈치로 알아서 해결하기도 한다.

동시에 사용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양보하고 예전 오래된 차를 써야한다. 곱게 사용하던 차인지라 아직은 멀쩡하지만 시내에 나가 일을 할 적에는 주로 지하철을 타다보니 자주 쓸 일은 없다. 주말에나 가까운 산책코스나 외식 코스가 다였다.

요즘 이성교제는 차가 있어야한다. 그냥 서로 간에 중간쯤에서 만나 식사를 하던 영화를 보곤 하였지만 이제는 교통도 복잡하고 차로 이동하는 것이 원칙처럼 되었다. 운전을 해서 상대방을 집까지 배웅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문화의 변환 시기는 그 수명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따라서 세대차의 기간이 좁혀지고 있다.

오히려 예전의 사는 방식들이 실리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불편을 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들들의 결혼도 들어와서 살던 시절이 그리울 것이다. 갈수록 편한 것만 추구하다 고립되는 상황을 떨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걸까? 모여서 함께가 아닌 흩어져서 찢어지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 결과 둘이 사는 네 식구로 버텨보지만 어느 순간에 힘이 빠지면 제 사는데 골몰하여 제각각 남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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