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서울자치신문 칼럼니스트,
장애인신문 논설위원,
서울시 강남자원회수시설
주민지원협의체 위원장 이병호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장마와 폭우,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를 무탈히 보내기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이제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집중 폭우와 폭염, 가슴 아픈 사고들도 그렇지만, 새삼 세상 인심이 점점 더 흉흉해진다는 느낌은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기록적인 폭우로 실종된 이들을 찾다가 초래된 어이없는 사고, 공무집행중에 일어난 황망한 죽음 등은 우리들을 망연자실하게 한다.

경북 예천에서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은 지난 7월 19일 오전 9시경에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대민 작전 근무 중 급류에 휩쓸려 14시간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정부는 지난 7월 21일 채수근 상병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채상병의 부친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전달했다.

채상병의 부친이 아들 영정사진 앞에 훈장을 내려놓고 허탈해 하는 표정을 지켜본 유가족들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하염 없이 눈물만 삼켰다. 해병대사령부는 “국가적 재난 사태인 예천군 호우재난에 투입되어서 숭고하게 작전을 수행한 고 채수근 상병의 영예를 위해 보국훈장이 추서됐다”고 전했다. 서훈식이 진행된 이날 빈소에는 채 상병을 추모하기 위한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당시 수색작업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 등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 ‘군인이 소모품이냐’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으며 해병대사령부는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이 맞다”며 사고 경위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갑자기 해병대 지원을 했다고 말해서 놀라고 믿어지지 않았다면서 왜 힘든 길을 택해서 가냐 말려도 봤지만, 그때 저희 생각을 굽히지 않았어야 했는데 안타깝기만 하다”고 탄식 했다. 그는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 했고 수료식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라며 “지금도 가슴이 아려오고 그때 많이 보고 대화를 할 것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날이 지옥 같다면서 모든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울먹였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지난 25일 해병대가족모임 카페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부르고 싶어도 부를 아들이 없다는 현실에 목이 멘다. 정말 많이 사랑한 우리 아들 수근이 너무너무 보고 싶다”라고 글을 올렸다.

채상병은 평생 국가에 봉사해 온 소방대원 아버지가 결혼하고 나서 10년 만에 겨우 얻은 소중한 외동아들이었다고 한다. 사고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현장에 달려온 아버지는, 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았냐고 했고, 그것은 자식 둔 대한민국 모든 부모의 외침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채 상병의 부모님은,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울음을 삼키고, 그저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떨궈지는 슬픔을 우격다짐으로 누르며, 다시는 얼굴을 만질 수도 없게 된, 아들의 장례 및 안장 절차를 지켜봤다. 하물며 애도와 위로를 전한 국민과 정부에 감사 편지를 전하며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 보겠다는 부모님의 다짐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국민적 슬픔을 주고 있다

남을 돕는 행위의 동기가 자신을 위한 것이면 이기주의, 남의 행복을 위한 것이면 이타주의가 된다. 순수하면서도 극적인 이타주의를 실행한 사람을 흔히 의인(義人)이라고 부른다. 의인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생면부지의 타인을 구하기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인간을 움직이는 본성으로 생존과 번식을 말하기도 한다. 모두 이기심에서 출발한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는 아예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번 장마의 폭우로 인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활약한 의인들이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청주 747번 급행 버스기사 A(58)씨는 자신이 목숨을 잃을 것을 뻔히 알면서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했다. 그는 버스 유리창을 깨면서 승객을 구했지만 급격히 밀려든 물과 토사에 묻혀 결국 본인은 살아나오지 못했다. 그 용기와 희생정신을 기리는 발인식이 지난 7월 20일 있었다. 참석자들은 평소 성실했던 그의 삶을 되돌아보며 눈물로 그를 배웅했다.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들의 무력함과 속수무책은 그 자체로 과연 우리가 자연에 어떻게 함부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책감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실종된 이들을 찾다가 초래된 어이없는 채상병과 버스 기사님의 죽음은 우리의 영혼을 황망하게도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정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의인들의 행동은 그런 상식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 고 채수근 상병과 버스 기사님은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에 구원의 종소리 같은 여운을 남기고 떠났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이시대의 진정한 영웅 고 채수근상병과 청주747번 버스기사님을 추모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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