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알앤제이' 공연 사진 ㅣ 제공 ㈜쇼노트
연극 '알앤제이' 공연 사진 ㅣ 제공 ㈜쇼노트

연극 <알앤제이>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둠 속에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무거운 종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이다. 거기에 외부의 소음과는 동떨어진 이해랑 예술극장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극장을 가득 채운 책걸상의 나무 냄새가 더해져 관객은 입장과 동시에 어느 학교 안으로 옮겨진다.

기본적으로 무대는 어둡고, 음악은 느리고 무겁다. 극의 배경은 숨이 막힐 듯 엄격한 가톨릭 학교이며 학생들은 실용성보다는 ‘학생다움’이라는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단정한 교복을 갖춰 입고 등장한다. 잘 훈련된 군인처럼 걸어와 착석한 학생들이 팔을 앞으로 뻗어 교과서를 들고 암기하는 장면은 학교와 군대, 교도소가 그 목적과 운영 방침에 있어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학생1은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취침 시간에 잠들지 않고 열정적으로 소네트를 쓰며, 기도 시간에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금서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본을 구해 자는 친구들을 깨워 은신처로 이끌고, 학생들은 어설프게나마 작은 공연을 시작한다. 금지된 일을 한다는 들뜬 마음과 현실의 자신과는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는 즐거움에 학생들은 처음의 긴장감을 잊고 금세 그 연극에 몰입한다. 그러나 외부의 작은 기척은 학생들을 움츠리게 하고 학생들의 몰입된 분위기는 시시때때로 깨어진다.

어쩌면 실제로 아침이 왔는지, 순찰대가 오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연극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생들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들이다. 억압을 통해 쌓인 두려움이 주는 머뭇거림, 고정관념에서 비롯되어 터지는 웃음, 그리고 학습된 폭력이 다시 야기하는 폭력이 연극의 진행을 위협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 안에 이미 내면화된 사회의 규범이 소수자로서의 그들에게 작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연극 '알앤제이' 공연 사진 ㅣ 제공 ㈜쇼노트
연극 '알앤제이' 공연 사진 ㅣ 제공 ㈜쇼노트

<알앤제이>에서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소수자성은 남학생들이 연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나타나는 퀴어서사이다. 둘은 로미오와 학생1, 줄리엣과 학생2를 오가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줄리엣을 연기하는 학생2는 캐퓰릿 부인과 유모 역할의 학생 3, 4와는 달리 소위 ‘여성성’을 나타내는 목소리와 몸짓 없이 줄리엣을 연기하고, 이는 무대 위의 소년들뿐 아니라 관객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갖고 있었을지 모르는 편견과 여성의 여성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동시에 깨뜨린다.

특히 십 대 소년이 가질 법한 말투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사랑에 빠진 줄리엣의 모습을 전달한 황순종의 연기는 <알앤제이>의 방향성과 부합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줄리엣이라는 캐릭터는 발코니에서 로미오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장면으로 납작하게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말투와 몸짓을 바꾼 것만으로 사실 줄리엣은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대담함과 죽음을 각오하는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면모를 효과적으로 되짚어 주며 동시에 누구나 꾸며내지 않은 그 자신으로서 충분히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따라서 이 극은 퀴어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이 대표하는 소수자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며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연극을 통해 그러한 소수자들의 작은 연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알앤제이>의 입체적임이 더욱 돋보이는 부분은 소수자들이 어떤 성취를 이루어냈을 때 가장 용감해 보였던 사람들조차 사실은 힘들어하거나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저 뒤에서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제 나름의 결단이 있다는 점을 섬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연극 '알앤제이' 공연 사진 ㅣ 제공 ㈜쇼노트
연극 '알앤제이' 공연 사진 ㅣ 제공 ㈜쇼노트

학생들은 연극을 하면서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던 교복을 벗어 던지고 차별적인 내용이 쓰여 있는 교과서를 찢어버린다. 그러나 학생들의 리더 격으로 그들을 독려하고 연극이 지속되도록 이끌어가던 학생1은 아침이 되어 학교로 돌아가려는 학생들을 말리다 뒤늦게 따라서 교복을 챙겨 입었으면서도 한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쓰러지고, 학생1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연극에 몰입하던 학생2의 교과서를 들고 있는 팔은 두려움으로 떨린다. 그러나 학생3은 자신이 연거푸 저지른 폭력에 큰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결국 다시 연극에 참여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 장면을 방해하던 학생4는 어느새 줄리엣을 사랑하는 유모가 되어 눈앞의 비극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깊은 밤이 끝나자 그토록 치열하게 진행되던 학생들의 연극도 끝나고, 관객들은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학생1을 마주하며 참담한 심정을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대사를 통해 건네어지는 다정한 위로와 용기는 학생1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객석의 모든 알앤제이는 무겁지만은 않은 발걸음으로 극장의 문을 나설 수 있게 된다.

‘만약에 네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이렇게 생각해. 어떤 환상이 보이는 동안 잠들었던 거라고. 그럼 괜찮을 거야. 끝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꿈처럼 헛된 일이라고 절망하진 마.’

때로 어떤 일은 그저 꿈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야만 그 상실을 이겨낼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움직임들은 언젠가 무언가가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그들이 원했던 끝으로 귀결되지는 않았으나 오랜 원수였던 두 가문의 화해를 이루어냈고, 학생들의 연극은 끝을 내지 못하고 중단되었으나 이제는 그들이 그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처럼. 학생1, 2, 3, 4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러나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아무도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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