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이병호
이병호 칼럼니스트

NYT(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은 선진국 인구 감소 문제에서 두드러진 사례 연구 대상”이라며 0.7명으로 줄어든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소개했다. 다우서트는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가 중세 유럽의 흑사병 창궐 당시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하며 이 같은 인구 감소는 14세기 흑사병의 인구 감소를 능가할것이라고” 경고했다. 칼럼에서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이 병역 자원 부족과 경제 쇠퇴, 도시 황폐화, 지역 갈등,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 방치 등 수많은 경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면서 “합계출산율 1.8명인 북한이 어느 시점에선가 남침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 저출산의 원인으로 극심한 입시 경쟁과 취업, 젠더, 지역 사회 갈등, 인터넷 게임 문화 등을 거론했다.

'인구절벽'은 어느 순간 한 국가나 구성원의 생산가능인구(working age polpluation)가 급격히 줄어들어 인구 구조가 고령화와 신생아 급감으로 마치 절벽이 깎인 것처럼 역삼각형 분포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인구절벽 상태에서는 투자·소비·고용이 감소하고 생산성 등 모든 경제지표가 떨어진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조선, 철강 등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는 산업은 노동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당장 기업은 구인난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을 수 있다. 인구절벽 시대에 노동력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로봇, 스마트공장 등 첨단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70년대 산아제한 공익광고
1970년대 산아제한 공익광고

우리는 1960년대 인구과잉으로 경제발전, 국방, 치안, 일자리 등 사회적문제 해결방안으로 산아제한 정책에 사활을 걸었지만 격세지감 지금은 인구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당시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산아제한 정책을 선전하는 포스터가 유행한 적이 있다. 1980년 초반 출산율은 2.1명으로 떨어졌지만 산아제한 정책은 지속되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엄마 저도 동생이 갖고 싶어요'라는 공익광고도 나왔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2026년에는 0.69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유엔 경제사회국이 내놓은 ‘유엔 세계 인구 전망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급속한 저출산으로 인구절벽 현상을 겪고 있는 전 세계 20개국 중 홍콩(1위·0.75명), 한국(2위·0.88명), 싱가포르(5위·1.02명), 마카오(6위), 대만(7위), 중국(10위), 일본(19위) 등 아시아 7개국이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출산율이 낮은 것은 높은 양육비와 집값 등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이 지역의 깨지지 않는 ‘유교 문화’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유교 문화권 (Confucianism)에선 육아와 가사를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다 보니, 고학력 여성들의 경력 단절 현상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출산과 육아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한 성에 대한 비교적 엄격한 도덕주의,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는 입신양명 남성문화, 학력주의, 삶의 만족도보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왜곡된 사회분위기 등이 여성의 출산율 저하 원인이 된다는 유엔의 지적이다. UN의 향후 인구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50년 총인구수는 4,577.1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15~64세 생산가능인구수는 2,398.4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100년 뒤 한국 인구는 1,500만 명이 되고 600년 후 최후의 한국인이 사망한다.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은 전쟁 때도 보기 힘든 현상이며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로서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지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유례가 드문 일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저출산의 덫에 빠진 한국을 ‘집단 자살사회’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로 규정했다.

유럽의 경우 1990년대부터 출산율 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각종 노력을 기울여 왔고, 그 결과 저출산 국가 프랑스는 2022년 기준 합계 출산율 1.79명을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4%에 달하는 정부 예산을 출산 및 조기 보육 시스템을 위한 출산 육아휴직, 가족수당 등의 제도를 도입해 가족 및 육아 정책에 사용하며 출산과 육아를 위해 정부예산을 아낌 없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1999년 혼인 외에서 자녀를 가질 수 있는 시민계약제도인 팍스(PACs)를 제정하는 등 범국가적인 인구증가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모든 유럽 국가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는 세계 1위의 우리나라 초저출산율을 방치하면 추세 성장률이 0% 이하로 낮아질 가능성이 2050년 50.4%, 2059년 79%로 높아진다고 보고 했다. 보고서에서는 저출산의 원인으로 청년층이 느끼는 경쟁·고용·주거·양육 불안 등을 지목하고, 해소 방안으로 교육 개혁을 통한 경쟁 완화 및 사교육비 절감,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주택 가격 하향 안정, 일·가정 양립 환경 조성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소멸 위기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미 22대 총선에 앞서 국민의힘은 인구부(총리급)를, 민주당은 인구위기대응부 신설을 공약했다. 인구 정책에 더해 지역균형발전까지 묶은 ‘인구지역균형발전부’로 하자는 시도지사협의회의 제안도 있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은 동전의 양면이다. 과밀 수도권이 빅뱅처럼 지역의 인구와 자원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오늘날 국가소멸의 위기를 낳았다는 분석도 있다. 윤석열대통령의 지방 방문에서도 국토균형발전 전략인 ‘부산 양대 축’ 구상이 시급히 추진되어 부산에서 균형발전의 모범 사례를 만들고 인구 감소세를 반전시키는 모멘텀을 찾아 이를 전국에 확산시키자는 대안도 있었다. 22대 국회 개원 즉시 정부와 정치권이 소모적 논쟁은 그만하고 인구감소에 총력대응 해야 한다.

 

이병호

- 서울자치신문 칼럼니스트

- 장애인신문 논설위원

- 한국장애인기술진흥협회 강남지회장

- 서울시 강남자원회수시설 주민지원협의체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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